(현장에서)28년전 남북기본합의서를 떠올리며
입력 : 2019-12-13 06:00:00 수정 : 2019-12-13 06:00:00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8년 전인 1991년 12월13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정식명칭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다. 양측 국무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남북한 대표단은 서울과 평양을 오고가며 5차례의 고위급회담과 13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거쳐 합의서 내용을 완성했다.
 
전문과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쌍방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남한과 북한의 거래는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라는 뜻이다. 이명박정부가 금지한 금강산관광, 박근혜정부가 폐쇄한 개성공단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또한 남북은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 3개 범주에 대한 합의사항을 담았다. 상호체제 인정과 존중, 무력침략 금지,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 경제협력 및 문화교류, 자유왕래와 접촉 실현, 철도·도로 연결 및 항로 개설 등이 눈에 띈다. 1990년대 이후 남북관계는 남북기본합의서 현실화 노력과 그것이 좌절되는 과정의 교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9년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베를린선언'과 2018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화답으로 녹아내렸다. 그 과정에서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 등이 성사됐고 다양한 합의문들이 나왔다.
 
그러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또 다시 얼어붙는 분위기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미국의 최첨단 정찰기들은 한반도 상공을 고공비행하고 있다. 북미의 신경전 속에 살짝 열렸던 한반도 평화의 문은 다시 닫혀가는 모양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가 북핵 위기 고조를 자초했다며, 대북 추가 제제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서 다시 노태우정부와 김일성정권이 만들어낸 '남북기본합의서'를 생각해본다. 남과 북,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미 30년 전에 한민족이 함께 가야할 길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현재 북한이 올 연말을 북미 협상 데드라인으로 못 박은 가운데 미국과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내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우위선점을 위한 북미의 기싸움이 치열하지만, 우리나라도 당사자인 만큼 다시한번 중재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반도 평화 당사자는 우리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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