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칼럼)재난지원금과 샤넬 가방
입력 : 2020-05-18 13:19:49 수정 : 2020-05-18 13:19:49
최용민 산업2부 기자
15년 전 중국 여행 중에 겪었던 일이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에 들어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중국에서 얼마간 살았던 친구가 북경에 유명한 클럽이 있다며 밤 문화 관광을 추천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클럽은 친구 말 그대로 화려했고, 어지러웠고, 시끄러웠다. 20대 초반 클럽 문화가 익숙하지 않던 숙맥에게 외국인이 즐비한 북경 유명 클럽은 적응하지 쉽지 않았다. 여행 경비도 넉넉하지 않아 1시간 정도 앉아서 맥주 한 병을 홀짝 마시고 클럽을 빠져 나왔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출발하려던 순간 누군가의 다급한 손이 택시 창문을 넘어 불쑥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삶이 팍팍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아이를 업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 여성의 푸석한 머리카락 사이로 클럽의 네온사인이 겹쳐졌다.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노숙자야 서울 시내에서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다. 다만, 그 순간 화려함과 비루함을 수초 사이에 경험한 그 찰나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양극화, 빈부격차 이런 것들을 20대 초반 먼 타지에서 몸소 겪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양극화나 빈부격차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기에 이 시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식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10년도 넘은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과 샤넬 가방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위기를 맞은 국가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이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손님이 끊긴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으로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쪽에서는 샤넬 가방이 논란이다. 샤넬이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에 코로나19 확산에도 가격 인상 전 가방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백화점 등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샤테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샤넬 가방 구매 열풍 원인을 설명하기도 한다. 가격이 오른 이후 중고로 팔아도 구매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비자들이 더 몰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생산년도에 따라 중고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샤테크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샤테크가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하필 긴급재난지원금과 함께 샤넬 가방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걸하던 중년 여성의 푸석한 머리카락 사이로 화려하게 빛나던 클럽의 네온사인이 다시 떠오른 이유다. 15년이 지났지만 중국이나 한국이나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재난지원금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는 사람과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전염병도 무릅쓰고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 사이에 간극은 깊다. 모두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들이 겪는 경험은 결코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자기 돈으로 명품 가방을 구매하는 것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자격도 없지만, 돈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주고 싶은 것이 명품 가방이다. 다만, 적어도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극화의 간격이 더 벌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다시 정치에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 누군가 정치란 ‘생산물을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21대 국회가 새롭게 시작된다.
 
최용민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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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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