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2021년부터는 국가 차원의 농민 기본소득을!
입력 : 2020-06-22 07:00:00 수정 : 2020-06-22 08:54:26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
정치권 안팎에서 오랜만에 의미 있는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의 여론도 나쁘지 않다. 리얼미터가 지난 5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48.6%였다. 반대한다는 응답률은 42.8%였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에 관한 역사가 길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의 찬성 비율은 생각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논쟁이 공허한 논쟁으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 정부의 예산편성을 총괄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기본소득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여러 경로로 밝히고 있어서다. 또 정부가 최근 강조하는 한국판 뉴딜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내용은 없다.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든, 단계적으로 도입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정을 예산에 반영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기본소득을 중장기적으로 논의하자'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물론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도입하는 데는 단계가 필요할 것이 사실이다. 재원 마련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나 당장에 시작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최근 100만명 서명운동까지 시작한 농민 기본소득 도입이 그것이다. 농민 기본소득 또는 농민수당은 이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정책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전남 해남군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충청남도에서도 연 8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곧 농민 기본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처럼 농민 기본소득은 지자체 차원에서 이미 많은 검토가 이뤄졌고, 시행하고 있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농민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농민 기본소득에는 아주 많은 재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농가인구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으로 농가인구는 224만5000명 수준까지 감소한 상황이다. 만약 농가인구 1인당 월 30만원씩의 농민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필요한 재원은 1년에 8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런 정도의 재원을 마련하는 건 세 부담을 늘리지 않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존 세출 예산에서 낭비되는 부분을 줄이기만 해도 8조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경제관료들의 견고한 예산기득권 구조이다. 경제관료들은 경기부양을 명목으로 한 토건예산에 집착한다. 게다가 행정부 각 부처는 자기네 예산을 어떻게든 뺏기지 않으려고 한다. 기획재정부도 자신들의 예산총괄 권한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혈안이다. 선출직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이들 관료집단을 제대로 통제해 본 적이 없으니 예산기득권이 해체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큰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21년 예산부터 관료들의 손에 예산편성을 맡길 게 아니라, 정치권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굵직굵직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농민 기본소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농민 기본소득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코로나19가 빚고 있는 비상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이후에 여러 곡물 수출국들이 곡물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린 적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19년 기준으로 식량자급률이 45.2%에 불과하고, 사료까지 포함해 계산한 곡물자급률은 21.7%에 그치기 때문이다. 인구는 5000만명이 넘고 삼면이 바다인 국가에서 이렇게 식량자급률이 낮은 것은 자칫 심각한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19일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곡물수급 위기상황에 대비한 해외 농업자원 확보 가상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 곡물수급에 위기가 도래했는데, 해외에서 곡물을 조달하는 것이 과연 쉬울 일이겠는가. 이런 훈련을 실시하고 매뉴얼을 개정하는 건 미봉책에 머무를 뿐 장기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내 농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이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농민 기본소득을 국가 차원에서 당장 지급해야 한다. 물론 농민 기본소득 하나로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정부 차원에서 빠르게 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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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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