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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남

(기자의눈)'미투상품' 만연한 은행들, 혁신은 어디에

2021-03-11 06:00

조회수 : 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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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맡기고 빌리는 은행에 유사상품이 어딨냐는 의문을 품기 쉽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굳이 다른 은행을 찾지 않고도 한 은행에서 비슷한 상품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마치 농심, 오뚜기, 삼양 3사가 육개장 맛 컵라면을 판매하고 있는 것과 같다.
 
카카오뱅크의 킬러콘텐츠인 '26주 적금'은 주 1회 예치 시 도장을 찍어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상품심사 시 당국이 도장을 찍는 기능이 무엇이냐고 묻자 카카오뱅크는 "재밌잖아요"로 대답했다. 깨진 틀은 시중은행이 금세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신한은행이 작년 말 출시한 '쏠xGS 백만원 챌린지 적금'도 자동이체가 완료될 때마다 주 1회 도장을 찍어준다. 이뿐만 아니라 카카오뱅크가 먼저 선보인 모임통장, 저금통 등도 다른 은행들은 자사만의 이름으로 바꿔 판매하고 있다.
 
시중은행 사이에서도 비슷하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9월 '비대면 헌금바구니'를 출시했다. 그달 14일에는 하나은행이, 연말에는 우리은행이 비슷한 비대면 헌금서비스를 내놨다. 하나은행이 2019년 '하나원큐신용대출' 출시하자 은행권 전체에서는 3분 만에 대출 가능한 대출 상품들이 쏟아졌다.
 
이러한 유사상품 만연은 한 은행이 제조업처럼 다수의 소비자 수요를 취급할 수 없는 특수성도 자리한다. 예컨대 케이뱅크는 지난해 비대면 아파트 주택담보대출을 먼저 선보였지만 선착순 상시 판매로 수요를 조절하고 있다. 특허만 놓고 보더라도 수신·여신이라는 큰 틀에서 이전과 다른 신규성 내지 진보성을 강조하기는 어렵다. 은행권에 과거부터 관련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점이 자리했을 터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고착하면서 마치 관행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잇따른 인터넷은행 상품 카피 지적과 관련 "창작이라든가 베끼든가 한다고 하면 안 된다"면서 "과거 당행이 만든 서비스도 모든 은행이 구축하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자신도 특허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며 되레 업권 관행에 익숙지 않은 신규 사업자를 책망했다.
 
그러나 빅테크의 진출로 소매금융 시장이 격화하는 상황이다. 곧 마이데이터 사업이 활성화되면 보다 세분된 맞춤 금융서비스가 등장하게 된다. 다양한 상품이 쏟아질 텐데 지금처럼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고수한다면 경쟁 도태는 시간문제다. 실제 카카오뱅크는 자사 서비스의 상표권을 무더기로 접수하면서 전략을 고치고 있다. 시장이 혁신하는 만큼 은행들도 바뀐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신병남 금융부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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