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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풍요와 공포의 역설

2021-03-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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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대정신을 말하는 때가 되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지금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역사상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지금도 같다. 지금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지금이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시대정신을 규정한다. 이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는 내용이 시대정신이 되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시대정신이 되려면 조건이 있다. 시대정신이 되려면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근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필자는 풍요와 공포의 역설이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지금 세계는, 그 중에서도 한국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은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가난하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 식민지로서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은 최첨단의 전자기기를 장착한 '불야성의 최첨단 선진국'이다. 한국은 의식주의 기본문제는 거의 해결했다. 옷은 남아도는 지경이고 음식도 너무 많아 뭘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주택문제도 많이 해결되었다. 사실 전국적으로 빈집이 나올 정도로 주택문제는 많이 해결되었다.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을 보면 집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은 투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집이 원래의 기능에 충실하다면 살 곳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질병도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완전히 해결했다고 할 정도였다. 한반도 역사상 이렇게 풍요롭고 안전한 적은 없었다. 한국은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제대국이 되었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역사상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시대도 없다. 미래에 대한 공포로 투자를 한다. 투자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부동산, 주식, 금, 비트코인 등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투자를 한다. 심지어 빚을 끌어들여 투자를 한다. 개인 부채가 사상 최대라는 것은 개인들의 공포가 사상 최대라는 것을 말한다. 미래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재의 불안을 선택한다.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자가 또 불안을 초래한다. 투자한 부동산, 주식, 금,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니 더 불안해진다.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투자를 했는데 투자가 다시 공포가 되니 아이러니다. 
 
풍요와 공포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갈등과 문제가 시작된다. 공포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더욱 살벌하게 느껴진다. 풍요와 공포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번 추락하면 재기는 없다. 풍요와 공포의 양극화로 갈등이 폭발한다. 한국 사회 갈등의 뒤편에는 추락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질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니 양보란 없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폭발할 것 같은 갈등의 시대가 된 것이다. 범죄는 살벌해져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사회갈등은 심각해져서 극단적인 말이나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주장을 펼 수도 없다. 정치권을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 고소와 고발, 흑색선전, 욕설과 비방이 난무한다. 화해와 화합의 말은 사라졌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에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다. 
 
풍요와 공포를 낳는 근본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해결방법 중 우선 필요한 것은 양극화 해소다. 양극화가 해소되면 성공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다시 열리는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적어진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할 가능성이 생긴다. 양극화는 갈등과 충돌, 욕설과 대결의 사회적, 경제적 원인이다.
 
다른 해결책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경제는 성장했고 사회는 풍족해졌다. 하지만 욕망은 충족되지 않았다. 더 큰 욕망이 생겼을 뿐이다. 욕망의 절제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부를 쌓아도 행복은 없다. 양극화 해소와 욕망의 절제가 함께 가지 않으면 풍요와 공포의 역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가운데 역사상 가장 공포에 떨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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