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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기자의 '눈')자율주행 규제 완화 더 미뤄선 안돼

2021-08-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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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도심 내 최고속도는 시속 3.2km다. 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로부터 55m 정도 앞장서서 걸으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간다."
 
얼토당토않은 이 규제는 실제로 1896년 영국에서 시행됐던 '붉은 깃발법(적기조례)'의 내용이다. 붉은 깃발법은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이자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자동차의 속도를 말보다 늦도록 규제한 이 법 때문에 영국은 전세계에서 자동차 산업을 가장 빨리 시작했지만 훗날 시장 주도권을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뺏겼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이 개발 단계를 넘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기술 선진국들은 자율주행 차량을 위한 법률 개정과 규제 완화를 통해 실제 주행의 법률적 요건을 구성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각 주의 법안에 따라 레벨3 이상 주행을 허용했다. 일본도 도로운송차량법 개정으로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운행 허용을 위한 제도를 정비했다. 독일 역시 완전자율주행차 운행이 가능한 법률을 제정 중으로 2022년 상시운행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레벨3 자율주행 기반 마련을 위한 4대 핵심 분야의 법과 규제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국내 자율주행자동차법은 명시된 사항에 한정해 규제 특례가 적용될 수 있는 '메뉴판식 규제 특례' 체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규정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특례를 받기 위해서는 임시 허가나 실증 절차를 다시 밟아야해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자율주행자동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해외 실정에 비해 국내에는 갖춰나가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특히 소관 부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행 모드별 운전자 주의의무 완화 관련 도로교통법은 경찰청, 자율주행 사고기록 시스템 구축 관련 규칙은 국토부, 군집주행 차량요건 신설 관련은 자동차관리법(국토부)과 도로교통법(경찰청) 등 소관 부서가 상이하다. 이는 빠른 규제 혁파에 불리한 상황으로 신속한 통합 로드맵 마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표에도 이같은 현실은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 코넬대학교,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등이 공동으로 발표하는 세계혁신지수(GII)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31개 국가 중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규제환경 부문에서는 52위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획득했다. 규제 완화 필요성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KPMG가 25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자율주행차 준비 지수'를 봐도 기술과 혁신(7위), 기반설비(4위)는 상위권에 올랐으나 정책과 입법(16위)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됐다. 영국의 사례처럼 한발 늦지 않으려면 과감하고 시의성 있는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환경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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