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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율

(기자의'눈')변협 '밥그릇 지키기' 오명 벗으려면

2021-08-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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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로스쿨 나와서 어디에서 사람을 만나겠어요. 로톡 같은 플랫폼이 있으니 상담할 기회도 생긴 거죠.”
 
로스쿨을 졸업해 올해 사회에 첫발을 딛은 30대 청년변호사의 한탄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문제로 지목한 법률 플랫폼 로톡을 둘러싼 갈등이 변호사 대 변호사간 싸움으로 격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103명의 현직 변호사들까지 나서 변협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11일 변협이 로톡 등 법률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 1440명에 대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징계 혐의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과도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이달 초 벌인 개정 광고규정징계조치와 관련한 설문조사 과정도 편파적이었다고 첨언했다. 애초부터 징계에 반대한다는 답변은 선택할 수 없도록 보기에서 없앴으며, 익명성도 보장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변협과 서울변회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은 없이,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이달 24일 이들은 로앤컴퍼니를 전자상거래법·표시광고법 등 법령 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다. 
 
기성세대가 포진된 6대 로펌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세를 불리고 있는 법률시장에서 청년·신입 변호사들이 일터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법률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가려면 여전히 아는 사람들의 소개나 추천에 기대거나, 인지도 있는 사무장 혹은 법조 브로커의 힘을 빌려야 한다. 
 
네이버 등과 같은 대형 포털의 등장에 그나마 신입 변호사들이 홍보할 수 있는 여건이 생겼다고 하지만 돈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다소 높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네이버 광고의 경우 중간에 광고 대행사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상당한 데다, 광고를 높게 부를수록 최상단에 노출되는 기회를 얻는 경매방식인지라 비용부담이 적지 않고, 변호사 상담으로 연결되기까지 시간이 꽤 소요된다. 
 
변협은 로톡과 같은 온라인 법률플랫폼의 등장을 경계하는 이유로 시장 자본논리에 변호사들이 종속될 것을 우려한다는 점을 꼽는다. 음식 자영업자와 배달업자가 ‘배달의민족’에 종속된 것처럼 변호사들이 법률 플랫폼에 종속되면, 무리한 가격 경쟁이 벌어져 결과적으로 질 낮은 법률 서비스가 남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협이 말하는 '질 낮은 법률 서비스의 남발 우려'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수임료가 낮은 소액 사건에 대한 수요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합리적인 가격의 변호사 풀을 제공하는 로톡과 같은 플랫폼의 진입을 막고, 기존 법률 시장 관행대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현재 법률 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질 낮은 법률 서비스 증가가 아닌 정보 비대칭 심화다. 돈과 인맥이 없는 일반 소비자는 경험 많고 수임료가 비싼 변호사들을 만나기도, 고용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변협은 신입, 청년 변호사들의 문턱도 갈수록 좁히고 있다. 변호사 활동을 하려면 연수를 반드시 거쳐야하는데 지난 5월 변협은 합격생 연수 인원을 800명에서 200명으로 제한하겠다고 선언했다. 변호사시험 10년만에 사상 처음으로 대폭 숫자를 줄인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 변협이 로톡 규제까지 나서자 기득권 변호사들이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변협은 공정성과 독립성을 수호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선 이 공정성과 독립성의 기준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가령 자본에 대한 종속이 우려된다면 플랫폼을 통한 광고 서비스를 일관되게 금지해야 한다. 네이버 등 포털 광고는 허용하고 로톡은 금지하는 모습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본 종속을 핑계 삼아 청년·신입 변호사들의 진입 기회조차 없애는 것은 선배 변호사로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또 '그들만의 리그'로 인해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태가 고착화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이제라도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최근 법무부까지 나서 로톡에 대해 광고 공간을 제공하고 광고료를 받는 '광고형 플랫폼'으로 규정하며 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제 공정위와 헌법재판소의 판단만이 남았다. 제 3자가 결정내리기 전에 변협이 먼저 로톡과 합의점을 찾고 또 청년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조치도 철회한다면, 후배들의 자본시장 종속을 우려하는 선배의 진정성이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선율 중기IT부 기자(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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