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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라

(차기태의 경제편편)내면의 법정에 귀기울여보라

2021-09-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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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끝내 사지에서 탈출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가 지난 27일 손태승 회장에 대한 중징계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손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우리은행이 DLF를 불완전 판매한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은행장에게 문책경고 처분을 내렸다. 손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내부통제를 부실하게 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문책경고를 받으면 연임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융사에 다시 취업할 수도 없게 된다. 형사소추의 대상이 아닌 경우 가장 무거운 징계라고 할 수도 있다.
 
해외금리와 연계한 파생결합펀드(DLF)는 금리·환율·신용등급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펀드다. 2019년 하반기 세계적으로 채권금리가 급락하면서 미국·영국·독일 채권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S와 이에 투자한 DLF에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시민들이 투자금을 날리게 됐다.  
 
금융당국의 문책경고에 대해 손 회장은 작년 3월 "'내부통제 미흡'을 이유로 CEO를 징계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징계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그 결과 이같은 중징계가 무효라는 1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 
 
손 회장은 이번 승소로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연임할 수 있게 됐다. 금융권 취업 제한도 벗어난다. 다른 금융사 경영진도 이번 판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테면 하나은행은 9월 초 사모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한 금감원 제재심을 앞두고 있다. 라임펀드 등 각종 사모펀드의 불완전 판매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금감원은 당시 은행장이던 지성규 하나금융 부회장에게 '문책경고' 중징계를 사전 통보한 상태다. 
 
신한금융그룹과 신한은행도 비슷한 처지이다.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으로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과 신한은행 진옥동 행장이 주의와 주의적 경고라는 경징계 처분 대상이다. 이 역시 금융위원회 제재안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손태승 회장이 이번에 승소했다고 완전히 면책됐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재판부도 "우리은행의 상품 선정 절차가 최소한의 정보유통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상품선정위원회를 마련하고도 9명의 위원에게 의결 결과를 통지하는 절차조차 없는 등 형식적인 내부통제에 그쳤다. 한마디로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이다. 
 
재판부 지적대로 ‘구조적인 문제’라면 그 책임은 결국 은행장에게 귀결된다. 다만 이를 근거로 중징계 처분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군이 전투에서 패배한 장군에게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손 회장은 지난 2월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와 관련해서도 중징계를 통보받은 상태이다. 손 회장은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 받았다가 '문책경고' 로 수위가 낮아졌다. 그리고  이번 판결로 징계가 더 가벼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할 때 DLF 사건에 이어 라임사태에 대한 책임이 겹쳤으니 사실은 ‘가중징계’ 대상이 아닐까 한다. DLF사태나 라임 사건이 은행의 이익과 자산건전성을 크게 훼손하거나 배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다지 심각한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욱이 손행장으로서는 평생 은행가로서 일해온 경력이 막판에 먹칠 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명예는 가능하면 지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그를 징계로 몰고간 사안들이 가볍지 않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추락시킨 중대한 사건들이다. 대상자도 무고한 시민들이다. 그렇기에 책임이 더욱 무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의 판결이나 금융당국의 징계내용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평생 ‘뱅커’로서의 직업적 자존심과 내면의 법정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진정 책임감을 느낀다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비슷한 책임이 있는 다른 은행장과 금융지주 회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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