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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대법 "가습기살균제 '허위광고 처분 시한' 다시 판단하라"

"원심, SK케미칼·애경 '위반행위 종료일' 잘못 판단"

2022-04-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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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독성물질이 함유된 가습기살균제를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허위·과장 광고한 혐의로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던 기업들이 다시 판결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원고승소로 판결한 원심에 대해 개정 전 법을 잘못 적용했다며 모두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9년 기업들 승소로 일단락 났던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법적 분쟁이 3년만에 재개된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SK케미칼이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면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이번 사건은 기업들의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허위·과장광고 행위 종료일(위반행위 종료일)'을 언제로 보느냐가 쟁점이었다. '위반행위 종료일'이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일인 2012년 6월22일 이전 또는 이후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공정거래법도 개전 전의 것인지 아니면 개정 후의 것인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정 전 공정거래법상 제척기간은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으로, 이 기간이 지난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처분은 위법하다. 그러나 개정 후 공정거래법상 제척기간은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또는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이기 때문에 그만큼 공정위의 처분 가능 시한이 늘어나게 된다. 
 
앞서 원심인 서울고법 6행정부는 SK케미칼의 '위반행위 종료일'을 제품을 수거하기 시작한 2011년 9월쯤으로 봤다. 때문에 공정위가 그로부터 6년 이상 지난 2018년 3월19일 이들 기업에게 처분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업자 등이 표시광고법 3조 1항을 위반해 상품의 용기 등에 부당한 표시를 했다면, 그 표시와 함께 해당 상품을 유통할 수 있는 상태가 계속되는 이상, 해당 상품을 수거하는 등 그 위반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부당한 표시행위로 인한 위법상태가 계속된다"면서 "결국 이러한 '위법상태가 종료된 때'를 '위반행위 종료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이 같은 조치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사업자 등이나 그 대리인이 일정 시점에 이르러 더 이상 해당 상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유통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SK케미칼은 종래 표시행위로 가습기살균 제품을 생산·유통해 오다가, 2011년 8월31일부터는 이를 더 이상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생산·유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후로도 SK케미칼의 제품은 제3자에 의해 종전과 같은 표시를 한 상태로 유통된 적이 있어 제품의 유통이 종료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2011년 12월30일 SK케미칼의 제품 판매 등이 법적으로 금지됐더라도 제품들의 종전 표시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완료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 판단 근거로 당초 시중에 유통되던 가습기살균제들이 2012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거되고 2013년 3월 무렵에도 소비자에게 판매되거나 판매 목적으로 유통업체 매장에 진열된 사실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면 SK케미칼의 제품 판매 등이 법적으로 금지된 2011년 12월30일 이후에도 합리적 소비자들 조차 가습기살균제 판매 등이 법적으로 금지됐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가습기살균제품이 사실상 유통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표시광고법 16조 2항 전단에 따라 준용되는 개정 공정거래법 49조 4항 1호는 공정위가 법 위반행위에 대해 조사를 개시한 경우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척기간의 기산점을 '조사개시일'로 정하고 있다"면서 "여기서 말하는 '조사개시일'은 '위반행위 종료일'로 보는 것이 판례이고, 그 시점은 '위법상태가 종료된 때'"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습기살균제 광고표시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일인 2012년 6월22일 이후 완료됐다면 개정 공정거래법상 제척기간 규정이 준용되고, 그 조치가 2013년 3월19일 이후 완료됐다면 그로부터 5년이 지나기 전인 2018년 3월19일에 이뤄진 공정위 처분은 제척기간이 지나지 않은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가습기살균제품의 유통량과 유통방법, 제품 수거 등 조치의 내용과 정도, 소비자의 피해에 대한 인식정도와 소비자에 의한 피해 회피의 기대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습기살균제 광고표시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언제 완료됐는지를 사회통념에 비춰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어야 했다"면서 "이와 다른 원심 판단은 결국 표시광고법과 공정거래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SK케미칼은 2002년 10월과 2005년 9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하면서 "성분 : 미생물 성장 억제 성분, 피톤치드 성분에 의한 상쾌한 기분과 산림욕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광고했다. 그러나 성분물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명시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이를 문제삼아 2011년 공정위에 제소했다. 그러나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조사에서 각각 '혐의 없음'과 '심의절차 종료'로 결론냈다. 이후 환경부가 이 가습기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해석을 내리자 공정위는 다시 조사에 착수해 결국 2018년 3월19일 "제품의 주요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사실, 흡입시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 등 인체 안전과 관련된 정보를 은폐·누락·축소한 것이고, 표시광고법상 금지한 '기만적인 표시·광고'에 해당한다"고 판단,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90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불복해 SK케미칼이 소송을 냈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공정위는 시민단체의 신고를 접수한 2011년 10월 SK케미칼이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는지 조사를 개시했고 SK케미칼은 2011년 9월 제품의 제조·판매를 적극적으로 회수함으로써 표시행위를 종료했기 때문에 공정위의 처분시한은 표시행위 종료일은 2011년 10월부터 5년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5년의 처분시한보다 약 1년 5개월여가 더 지난 2018년 3월19일 공정위 처분은 처분시한 경과 후 이뤄져 위법하다"고 판단, SK케미칼 손을 들어줬다. 이에 공정위가 상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도 SK케미칼과 같은 처분을 받은 애경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대법원 2부의 이번 판결과 같은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애경이 공정위로부터 명령받은 과징금 납부 금액은 8800만원이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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