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전연주

이준석, 윤석열 첫만남부터 '시련'은 예고됐다

거듭된 '윤핵관'과의 정면충돌로 사망선고…버티기 돌입했지만 권성동 직무대행체제로 전환

2022-07-08 14:08

조회수 : 3,623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8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소명을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며 입장을 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전연주 기자]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8일 새벽 이준석 대표의 '성접대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의결해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징계 처분을 보류하겠다"며 버티기에 돌입했지만 대표직 유지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징계 의결과 함께 (대표)권한이 정지돼 원내대표가 직무를 대행한다"며 "이 대표가 불복해도 직무대행 체제는 계속된다"고 빠르게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0선의 30대 젊은 정치인이 보수정당 대표로 등극하면서 대한민국 정치권에 '이준석 돌풍'이 불었지만 세력화 없이 적만 만든 결과는 참혹했다. 특히 거침없는 언변으로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과 정면충돌을 이어가면서 이 같은 비극은 불가피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만남부터 이 대표의 시련은 예고됐다.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을 둘러싼 신경전이 그 시작이었다.
 
지난해 7월30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 대표가 부재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입당 여부와 시점에 대해 '8월 중 결단을 내리겠다'고 언급했지만, 기습적으로 이날 전격 입당을 선언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이 대표는 지방일정을 수행 중이었다. 그러자 '이준석 패싱론'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원래 (8월)2일에 입당하는 것으로 사전에 양해가 있었는데, 중간에 정보가 유출됐다고 해서 일정을 급하게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도 “(윤 전 총장이 입당 시점을)다시 상의를 했어야 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과거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 선봉을 자처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되면)지구를 떠나야지"라고 말한 사실을 원인으로 짚었다.
 
윤 대통령은 입당과 함께 과거 친이계의 도움으로 빠르게 당심을 장악했다. 그 결과 홍준표 후보에게 민심(국민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지고도 국민의힘 20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당무 우선권이 당대표에서 대선후보로 넘어갔고 윤 대통령은 이를 활용해 당 사무총장을 갈아치웠다. 이준석 패싱이 거듭되던 끝에 이 대표는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29일 돌연 잠적했다. 윤핵관과의 전면전이었다.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지방을 전전한 끝에 이 대표는 12월3일 울산회동을 통해 윤 대통령과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바로 그날 윤 대통령이 선대위 합류를 강하게 요청하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수락하며 '드림팀' 완성을 목전에 뒀다. 
 
지난 1월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대표는 울산회동 18일 만에 "선거대책위원회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며 또 다시 벼랑끝 전술을 꺼내들었다. 거듭된 이 대표의 돌발행동에 윤핵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표직 사퇴 요구로 맞섰다. 갈등은 이 대표의 당대표 사퇴 촉구 결의안 추진을 위해 열린 의원총회에 윤 대통령이 깜짝 등장하며 다시 봉합됐다. 이 대표는 "또 한 번 도망가면 당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의원들에게 약속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막판 거센 추격전을 펼치자 조급해진 윤 대통령 측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했다. 안 후보와 오랜 앙금이 있던 이 대표는 부처님 손바닥 안 손오공 사진까지 페이스북에 게재하며 안 후보를 조롱했고, 단일화가 아닌 후보 사퇴의 백기투항을 요구했다. 단일화 가능성이 닫히자 윤 대통령은 "단일화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며 "안 후보와 나 사이에서 전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이 대표와는 다른 의견을 개진했고, 결국 이 대표가 윤핵관 중 윤핵관으로 지목한 장제원 의원이 나서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이 대표와 윤핵관과의 갈등은 계속됐다. 2030 여성이 돌아서고 호남에서 이 대표가 장담했던 득표율이 나오지 않자, 윤핵관은 이 대표의 득표력을 의심하며 대선 승리 일등공신 반열에서 그를 제외시켰다. 지방선거까지 대승을 거뒀지만 이는 새정부 출범 효과로 몰고 갔다. 급기야 이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 직후 혁신위 출범을 선언하며 22대 총선 공천권에 대한 사전견제에 돌입했고, 이는 다음 당권 수순인 윤핵관의 크게 심기를 건드렸다. 
 
이 대표는 윤핵관으로부터 받은 핍박에 대해 "대선 때 이기고 나서도 '0.7%포인트 차로 이겼다'고 공격하고, 지선 때는 크게 이기니까 '우크라이나 왜 갔냐'고 공격하고, 혁신위를 출범한다고 하니까 '왜 혁신하냐'고, '사조직'이라고 한다"며 "3월9일 대선승리를 하고도 어느 누구에게도 축하를 받지 못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대접받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저를)갈아 넣어서 6월1일 (지방선거에서)승리하고 난 뒤에도 바로 공격당하고 면전에서 무시를 당하고 뒤에서는 한없이 까내렸다"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결국 이 대표는 성접대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윤리위 심판대에 섰고,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으며 '이준석 돌풍'을 조기 마감해야 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로서의 권한을 이용해 자신에게 내려진 윤리위 징계 처분을 보류, 당대표 직 유지를 위한 마지막 안간힘을 썼지만 윤핵관의 맏형 격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빠르게 직무대행 체제를 선언하면서 윤핵관과의 대결은 '완패'로 끝나게 됐다. 그의 말대로 선거가 모두 끝난 뒤에 이뤄진 '손절'이 아닌, '익절'이었다.  
 
전연주 기자 kiteju1011@etomato.com
  • 전연주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