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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윤 대통령님, ‘DJ-오부치 선언’뿐 아니라 ‘DJ-장쩌민 시대’도 있었습니다

2022-1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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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와 관련해 대선 후보 때부터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해왔다. “1998년 두 정상이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한일관계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거의 모든 원칙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손해와 고통을 입힌 과거를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한 것을 전제로 나온 선언이라는 점을, 윤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일관계 악화 책임이 문재인정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이 선언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10월8일, 국빈 방일 2일째를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제공)
 
과거사 문제에서 오부치 정부와 아베 전 총리 2기 내각 이후의 일본 정부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0%를 넘겼다. 우리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며 일본 전후 세대가 과거사 문제와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윤석열정부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강조는 김대중정부와 문재인정부를 분리하겠다는 정치 전술적 측면이 강하지만, 김대중 시대에 대한 이 같은 전향적 시각은 의미가 있다. 덧붙여 현 정부는 김대중-장쩌민 시대 시대 한중 관계도 숙고해 볼 만하다.
 
지난달 30일 사망한 장쩌민 전 주석이 중국공산당 총서기이던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 노태우정부의 역작인 '북방정책'의 최대 성과물이었다. 장 전 주석은 국가주석 취임 3년 차인 1995년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국회 연설까지 했다.
 
98년 김대중-장쩌민 정상회담, 한중 관계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
 
2000년 ‘마늘 파동’때 중국은 삼성전자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으로 보복하기도 했으나, 전체적으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토대를 닦은 한중 관계는 DJ정부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8년 11월 베이징에서 만난 DJ와 장 전 주석은 한중 관계를 ‘선린 우호관계’에서 ‘21세기의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다. 중국은 1996년부터 수교국과의 관계를 단순 수교→선린우호→동반자→전통적 우호협력→혈맹의 5단계로 분류해왔는데, 그 중 세 번째 단계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양국 관계를 경제 분야를 넘어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협력 관계로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경제성장에 올인하던 중국으로선 한국의 기술과 투자가 절실했고, IMF 외환위기를 벗어나야 했던 한국에게도 중국이라는 광대한 시장이 긴요했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상으로도 북한의 배후국인 중국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1998년 11월12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두나라 관계를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다. (사진=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제공) 
 
양 정상의 개인적 관계도 한몫했다. 사석에서 장 전 주석이 DJ를 '따거(大哥·큰형님)'라고 부르면서 존경을 표시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는 2001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한중 정상회담 때 외교 의전상 한국측 방문 순서였음에도 "동생이 형님한테 와야지요. 동생이 형님을 앉아서 맞을 수 있습니까”라며 먼저 DJ대통령 숙소를 찾아오기도 했다.
 
장 전 주석은 DJ가 북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가입 압력을 거부하는 등 중립 외교를 펼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랑에 든 소, 양쪽 풀을 뜯어먹을 것인가-열강 쇠창살에 갇혀 그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인가
 
지구에서 유일하게 세계 4대 최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균형·실용외교는 우리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DJ가 “우리에게 외교는 명줄이나 다름없다”며 “한반도는 4대국의 이해가 촘촘히 얽혀 있는, 기회이자 위기의 땅이다. 도랑에 든 소가 되어 휘파람을 불며 양쪽의 풀을 뜯어먹을 것인지, 열강의 쇠창살에 갇혀 그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인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고 설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DJ의 ‘도랑에 든 소’ 담론은 ‘국익중심의 실리외교론’의 다른 이름이었다.
 
물론 장쩌민 시대 중국은 G2로 올라서기 전이라 미국의 견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의 대중 전략에 여백이 컸다. 지금처럼 미국이 공공연하게 대중 무역전쟁을 불사하고, 미래 성장 동력인 BBC(Bio, Battery, Semi-conductor Chip) 분야에서 중국을 봉쇄해버리겠다는 상황에서는 우리의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전략적으로 중국을 ‘안보에 대한 도전자’로 규정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자리를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 일정으로 잡고,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이 무대를 이용해 공개적으로 반중 발언을 하는 행태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DJ의 우려대로 "열강의 쇠창살에 갇혀 그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인지"의 관건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닌가.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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