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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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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스토마토 산업1부 김진양입니다.
응급실 유랑

2023-03-02 18:05

조회수 : 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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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잘 뛰놀고 잘 먹고 무사히 잠이 들었던 아들이 한 밤 중 울면서 일어났습니다. 배가 아프다네요.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인 줄 알고 배를 만져주며(일명 배야배야) 다시 잠을 자려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자꾸 몸을 배배 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배를 만져준 지 10분이 다되가는데 진정이 되기는커녕 점점 더 고통을 호소합니다. 급기야 엉엉 울면서 밤 중에라도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간다니요. 응급실을 가면 끔찍히도 싫어하는 피검사까지 하는 것을 뻔히 아는 아이가, 그래도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비상상황이지요. 
 
서둘러 옷을 갈아입습니다. 아이는 내복 바람에 파카만 겨우 입혀서 '금방 병원에 도착하니 조금만 참으라'고 안심을 시키고 차에 태웠습니다. 
 
응급실이라면 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지겹도록 많이 다녔습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병이었지만, 그 때마다 대형 병원이, 소아 응급실이 잘 갖춰진 병원이 집 근처에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도 아이가 있다면 대형병원을 주거 여건을 정하는 변수에 넣을 것을 적극 권했을 정도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항상 가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소아응급실은 발열환자 대기실로 변했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는 것이 1초도 참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좋을 것이란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접수를 하기도 전 예진실 간호사가 나와 말합니다. "지금 안에 남는 베드가 없어요. 접수를 한다 해도 6시간은 기다리셔야 해요" 애가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데 6시간을 어떻게 기다린단 말입니까. 저는 물었죠. "그럼 어떻게 해야해요?" 다른 응급실을 빨리 알아보던지 아니면 그냥 기다리랍니다. 기약없이. 
 
대기 중에는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는 것을 알기에 다시 인근의 병원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애초에 집에서 그쪽을 선택해 갔더라면 벌써 도착했을 시간이더군요. 저의 판단 미스에 조금은 짜증이 났지만, 일단 갔습니다. 오히려 최근 소아 응급실을 확충한 곳이라 마음의 위안은 됐습니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입니까. 응급실은 24시간이지만 소아 응급실은 주말의 경우 오후 9시까지 밖에 운영을 하지 않는다 합니다. 이유는 당직 선생님이 안계셔서. "그럼 저는 어떡하나요?" 또 물었죠. 입구 밖에 119 구급대원들이 있으니 그쪽에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답니다. 119 아저씨들은 인근의 시립 종합병원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마침내 응급실 접수를 했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울 힘도 없이 축 늘어졌습니다. 언제쯤 병원에 갈 수 있냐는 말만 남긴 채로요. 마지막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시계를 봤습니다. 새벽 1시30분입니다. 집에서 첫 번째 병원까지 10분, 두 번째 병원까지 다시 15분, 세 번째 병원까지 또 다시 15분. 사이사이 진료 거부(?)를 당하는 시간까지 더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만약 집에서 다른 병원들을 거치지 않고 왔다면 이미 진료를 보고도 남았을 시간입니다. 
 
한 밤 중 응급실을 전전하면서 문득 얼마 전 봤던 유튜브 영상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육아 팁을 얻기 위해 구독하고 있는 소아과 선생님들의 채널인데요, 소아과 의사 대란에 차마 침묵할 수 없어 의견을 보탠다며 한 얘기가 "후두염에 아기가 죽었다"는 뉴스였습니다. 후두염으로 열이 나 병원을 찾던 아이가 결국 제 때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중대 질병도 아닌, 흔히 말해 '목이 좀 부었다'고 표현하는 후두염으로 말입니다. 
 
기자의 집을 중심으로 반경 5㎞ 이내에 '대학병원'이라 이름붙은 대형병원만 4곳이 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세 곳을 찾았고 두 곳에서는 '입구컷'을 당했습니다. 그나마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에서도 이럴진데, 병원 자체가 드문 곳은 어떨까요. 
 
다행히 배가 아프단 아이는 단순 '변비' 처분을 받고 안정을 취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맹장염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여담으로, 세 번째 도착한 병원에서도 아이는 소아 전용 응급실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만 6세가 넘으면 성인과 함께 진료가 가능하다는 지침 아래 일반 구역으로 배정을 받았습니다. 화장실을 가던 도중 소아 응급실 앞을 지나치게 됐는데, 그 곳은 이미 아수라장이더군요. 그 중 상당수는 저와 같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출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외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사진=뉴시스)
 
  • 김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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