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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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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함정

2023-05-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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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실손보험 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즉각지급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침, 인후통이 전혀 없는 무증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난생 처음 겪는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머릿 속이 블랙으로 바뀌면서 뱅뱅 도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지럼증이 계속돼 결국 상급종합병원 신경과를 찾았습니다. CT를 찍어봤지만 이상이 없었고 의료진은 6개월 뒤에도 어지럼증이 계속되면 그때 MRI를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어지럼증은 8개월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처방 받았던 약들은 효과가 없어 MRI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다고 교수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는 MRI를 찍을 정도로 이상이 없어 보인다며 환자가 원해서 찍을 경우는 '비급여' 처리가 되는데 괜찮냐고 저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초진 당시 6개월 뒤에도 어지럽다면 MRI를 찍어봐야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교수님이 아니었냐"며 "제 의견이 아니라 교수님 판단으로 찍었으면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실손보험 청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보험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은 아파야 가는 곳입니다. 길을 가다 심심해서 어디가 안 좋은지 검사나 해 볼까 한다면 당연히 건강보험 적용이 아닌 비급여로 처리됩니다. 이 경우 실손보험 청구도 당연히 안 되겠지요. 
 
그런데 의료기관에 가는 환자들이 말하는 아픔은 곧 '증상'입니다. 의료인은 환자가 말하는 증상을 토대로 한국질병분류(KCD)에 맞게 진단합니다. 여기서 괴리가 발생합니다. 증상이란 다분히 주관적이라 환자의 설명은 사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료인은 문진을 한 뒤 가려 듣고 차트에 기록합니다.
 
한 지인은 하혈을 하고 아랫배에 통증이 있어 산부인과에 방문해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당연히 실손보험 청구를 했는데 지급을 거절당했습니다. 의사가 일반초음파로 처리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쉽게 말해 질병없이 환자가 원해서 초음파 검사를 한 것으로 처리된 겁니다. 초진 차트에는 의료기관에 온 이유도 제대로 안 쓰여 있었습니다. 이후 지인은 그 산부인과에서 호전이 없어 의뢰서를 받아 상급종합병원 산부인과를 찾았고 다른 질병이 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보험사에 애초에 아파서 산부인과를 간 게 증명이 되지 않았냐고 주장하니, 이전 일차 의료기관에서의 초음파 비용까지 포함해 지급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아주 건강한 사람은 5%, 환자는 20%이고, 나머지 75%는 미병(未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주 건강한 사람은 그만큼 드물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크고 작은 통증, 증상을 달고 삽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은 때로 주관적이고 현대 진단 장비에도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의사의 진단도 늘 동일하지 않습니다. 상급종합병원이라도 의료진마다 진단이 다르게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아주 병이 심하게 악화된 상태라면 진단이 일치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에 병원을 찾으니까요. 
 
14년 만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저는 청구 간소화가 되면 의사는 편의대로 작성하고 보험사는 보험사에 유리한 식으로 해석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일이 증가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렇게나 주관적 영역이 많은데 의료기관이 맞게 처리해 줄 것을 믿고 바로 서류를 넘기기가 찜찜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 보험업계에 문의해 봤습니다. 그러자 의료기관에서 전송하기 전에 환자가 내용을 확인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또 애초 문진을 대충 하거나 판단을 환자에게 떠넘기는 의사라면 그것은 의료진의 문제라는 거지요.
 
그런데 각종 의학적 용어와 질병 코드로 표기하는 진단서 또는 복잡한 세부 내역서를 보고 가능하면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도록 서류가 맞게 발급됐는지 '즉석'에서 알 수 있는 환자들이 몇이나 될까요? 저의 경우 서류를 확인한 뒤 전화로 주변에 묻거나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고 문제가 있으면 의료기관에 다시 얘기해 서류가 수정되는 일이 상당히 비일비재 했습니다.
 
게다가 의료인의 권한이 막강한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권위 있는 의료진의 판단에 다른 주장을 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제가 어지럼증으로 진료를 받았던 의사는 우리나라에서 그 분야 명의로, 예약하면 기본 대기가 6개월인 분입니다. 심지어 현재 의료계는 청구 간소화를 원치 않는 입장입니다. 
 
청구 간소화와 관련해 개인정보 유출부터 중계기관을 어디에 두냐까지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너도나도 환자 또는 소비자를 위한다며 찬반 이유를 대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는 얻는 게 뭘까요?
  • 윤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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