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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국가 실패 막으려면 법과 제도 바로 서야"

현 시대 비추는 정병석 한양대 교수의 조선시대 이야기

2016-11-24 08:00

조회수 : 6,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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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국가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공정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법의 권위를 세워 신상필벌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는 동력을 잃고 무너지는 거에요. 우린 이미 조선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19일 사당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63·전 노동부 차관)는 현시대를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올곧지 못한 법과 제도하에 몰락한 조선의 모습이 현 시국의 우리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는 지적이었다.
 
지난달 그가 펴낸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시공사)’에는 현재의 세태를 ‘거울’처럼 비추는 조선시대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국가의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양반계급은 엄격한 신분제를 공고히 하며 백성들의 의욕을 꺾었다. 사회통합이나 국가발전을 위한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 교수는 저서에서 결국 이 같은 이유들로 조선이 ‘몰락’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우연히 책 출간 시기가 시기적으로 현 시국과 맞닿은 부분이 있지만 정 교수는 5년 전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반계수록’ 등 조선 중후반기의 고전들을 탐독하며 당시의 훌륭한 제도 개혁론들을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저는 노동부에서 30년 동안 일하다가 2008년부터 한양대에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당시 대런 애쓰모글루 등 외국 석학 3명이 저술한 논문을 읽고 국가의 경제성장을 제도적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유럽과 한국 경제사에 이를 적용해보다가 문득 ‘반계수록’이나 ‘북학의’, ‘우서’ 등에 나온 훌륭한 제도들이 왜 당대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나 고민이 커지게 됐어요. 그래서 조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죠.”
 
하지만 연구 작업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강의를 병행하면서 관련된 모든 원문자료들을 샅샅이 뒤지기 위해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오가야 했다. 경제학자였지만 한편으론 역사가적 관점에서 자료들을 비교하고 분석했다.
 
“17세기 후반 유형원이 저술한 반계수록은 조선시대의 제도적 틀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사료에요. 토지제부터 군사제, 교육제, 과거제, 조세제, 신분제 등이 모두 담겨 있거든요. 하지만 이를 정확히 볼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연구 작업에 애를 먹었죠.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1961년에 나온 번역본이 1권 있고요. 국회도서관에 1959년에 나온 번역본이 4권이 있지만 오역이 많아요. 한자 원본과 함께 세 가지를 비교해가면서 뜻을 분석해야 했어요. 나머지 다른 사료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고요.”
 
당시의 법과 제도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다 보니 ‘총론’만 있고 ‘각론’은 부족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성리학적 질서 하에 지배층들은 법망 사이를 교묘히 빠져나갔고 공포된 법령이 엄정히 실행되지 않는 사례도 빈번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란 질서 아래 법과 제도가 아주 폐쇄적이었어요. 임금부터 양반, 사대부 등이 자신의 권력 독점을 잃지 않으려 제도 개혁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가령 경국대전에 실제로 표기된 신분제도는 양인과 천민으로 나뉘는 ‘양천제’였는데 실제적 구분은 양반과 상민으로 나뉘는 ‘반상제’가 적용됐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부실한 법과 제도 하에 지배층은 공물, 부역 부담 등을 모두 회피했고 피지배층의 부담은 컸었어요. 결국 국가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죠.”
 
하지만 당대에도 부분적으론 민생의 과제를 개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던 노력도 있었다. 정 교수는 대동법과 경연제도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대동법은 100년에 걸쳐 완성된 조세제도였지만 당시 포용과 관용, 통합의 원칙이 엿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왕실에 있던 관료들뿐 아니라 지방 유생들과 학자들의 의견까지 모두 반영하거든요. 경연제도의 경우도 현직 관료뿐 아니라 퇴직 관료까지 하루에 3번씩 임금과 대면 토론을 했었죠. 우리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제도들이죠.”
 
그는 이러한 부분들을 취해 현재의 우리나라도 포용적인 정치와 경제제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선 강력한 법치주의 아래 대화와 타협의 문화도 자리잡아야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고위층들을 보면 제도적 실패의 문제는 비단 조선시대에만 국한됐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인 것이죠. 미국 같은 선진국을 보면 기본 세금을 내거나 공권력 집행 방해를 할 때 지배계층이든, 아니든 법이 엄정하게 실행되거든요.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해요. 그리고 법 이외의 부분에선 대화와 타협, 갈등 조정 등의 소통능력이 필요하고요.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주자 예법에 맞지 않다고 상대를 죽이던 ‘사문난적’과 뭐가 다르겠어요. 의견이 조금 다르더라도 이해해주고 포용해주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를 펴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 사진/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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