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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페미니즘으로 주류 경제학 비틀어 보기

‘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김희정 옮김|부키 펴냄

2017-02-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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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시작점이 된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 이 같은 문장을 남겼다. 그는 세 경제 주체가 일하는 것이 단순히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윤 추구를 위한 욕구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용어로 규정했다.
 
용어를 명명한 건 스미스였지만 유행시킨 건 후대 경제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경제가 과학의 입자처럼 개개인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개인에 이론과 합리로 대표되는 전통적 남성성을 부여하며 ‘경제적 인간’이란 꼬리표를 달아줬다.
 
이들에 의한 세상은 시계처럼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하나의 세계였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예측 가능한 인간들의 총합이 사회 그 자체의 이론이 됐고 ‘대체할 만한 다른 이론’은 끼여들 틈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류 경제학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됐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처럼 과연 세상이 인간의 이기심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스웨덴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카트리네 마르살은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한다.
 
마르살이 보기엔 이미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부터 중요한 한 가지 전제가 빠져 있었다. 바로 모든 경제적 활동의 배후를 든든하게 떠받쳐 왔던 전 세계 여성들의 존재였다.
 
실제로 스미스 역시 어머니 마거릿 더글라스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았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던 그는 어머니의 집안일에 의존하며 국부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국부론 속에 등장했던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부인이나 어머니, 누이들의 무임금 가사 노동과 돌봄이 뒷받침됐어야 했다.
 
“‘저녁식사가 어떻게 식탁위에 올라오는가?’는 경제학의 근본 질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 답이 자기 이익 추구라고 했지만 저녁마다 식사를 식탁에 차리고 그가 열이 날 때 옆에서 돌봐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179쪽)
 
스미스에 이어 후대의 주류 경제학자들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여성들의 노력을 간과했다. 이들은 여성들의 무보수 가사에서 나오는 공감, 신뢰, 이타심 등의 가치들을 경제 성장 요소에서 철저히 배제시켰다. 그들이 보기에 이런 가치는 사회적 직업활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활동은 국내총생산(GDP)을 계산할 때 포함되지 않는 ‘제2의 경제’로 존재해왔었다”며 “애덤 스미스와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마르살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동등한 권리와 자유가 있으니 마음껏 경쟁하라”는 문구를 내건 고용시장은 여전히 ‘남성의 필요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고 있고 여성들은 사회에서 힘들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전 세계 노동 시간 중 무보수 노동 시간이 여성은 75%, 남성은 25%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살은 이제부터라도 도외시 돼 온 가치들이 제대로 평가돼야 한다고 본다. 인구 절반이 하루의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들여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세계의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바로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왜 나오는지 이해하려면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경제학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중략)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298쪽)
 
마르살은 이러한 관점과 대척점에 있는 주류 경제학의 실상을 파헤칠 때 현대의 경제 위기 상황도 바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7년 미국 주식시장 폭락, 일본 경제 붕괴, 2002년 닷컴 버블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변질된 이기심과 욕망이 있었다. 이는 주류 경제학 이론이 오늘날 더 이상 현실 경제에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결과다.
 
“시장은 항상 옳은 가격을 매기는 중립적인 기계가 아니다. 금융인 조지 소로스는 현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시장은 항상 틀린다.”(119쪽)
 
마르살은 주류 경제학의 ”공짜 점심은 없다”에 한 가지 문장을 더하며 책을 요약 정리한다. “공짜 돌보기는 없다” 공감, 신뢰, 이타심 등의 가치가 다시 복원될 때 그는 우리가 ‘세계 경제의 나머지 절반’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사진/부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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