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박 전 대통령 '운명의 날'…법원 안팎 '아수라장' 속 '무거운 침묵'

삼엄한 경비 속 출석…웃음기 가시고 '침통'…법원 청사 인근 막판 구속 찬·반 집회로 시끌

2017-03-30 19:29

조회수 : 2,214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홍연·조용훈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영장 심사를 받는 30일, 서울중앙지법 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동과 박 전 대통령의 사저가 위치한 삼성동은 이른 아침부터 살얼음 같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서초동에서는 청와대 경호인력과 취재진이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박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소속 회원들도 법원검찰 삼거리에서 집회 준비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정문 좌우에는 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인 대통령국민저항본부(대국본)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박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법원 안팎 경찰 1920명 배치


경비는 삼엄했다. 청사 주변에는 경찰 24개 중대 1920명의 병력이 배치됐으며, 법원은 청사 북동쪽에 있는 서울회생법원(구 3별관)쪽 입구로만 차량 진·출입을 허용하고 나머지 출입구는 폐쇄했다. 청사 내부에서도 경찰들이 곳곳에서 경비를 섰다. 심사가 예정된 321호 법정이 있는 주변에는 사전에 비표를 받은 취재진만 출입이 허용됐다. 물론 민원인들은 법원이 사전 따로 준비한 동선으로 업무를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법원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같은 시각 삼성동도 공기가 얼어붙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새벽부터 모여 현수막과 태극기를 흔들었다. 개중에는 사저에서 큰길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드러누워 박 전 대통령 영장심사 출석을 막겠다는 시민도 있었다. 경찰인력이 대거 투입돼 도로에 선 지지자들을 양 옆으로 밀착시킨 뒤 길을 내는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박 전 대통령 남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 부부가 사저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오전 10시9분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윤상현,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등 친박 인사들을 먼저 내보낸 뒤 사저를 나섰다. 웃는 듯 마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측근에게 눈인사를 건넸지만 검은색 에쿠스 차량에 올라탈 때 표정은 굳어 있었다.



취재차량 2대 바짝…위험한 순간도


영장심사를 받으러 법원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큰길로 나오기 까지는 흥분한 지지자들의 돌발행동으로 몇차례 멈춰섰고, 경찰 호위를 받으면서 삼성동에서 서초동 법원으로 이동할 때에는 취재차량 두 대가 좌우로 바짝 접근하면서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호 차량과 경찰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봉은사로와 사평대로, 반포나들목, 서울성모병원 사거리를 지나 유턴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문을 통해 진입했다. 약 6km를 이동하면서 걸린 시간은 11분. 지난 21일 검찰 출두 당시 테헤란로를 이용해 이동했던 경로보다 약 3분이 더 소요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탑승한 경호차량(오른쪽 두번째)이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통과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전 10시20분쯤 박 전 대통령이 법원에 도착했다. 84명의 취재진이 출석 모습을 담기 위해 청사 내 4번 출입구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의 차량 도착 모습을 찍기 위해 서관 제2주차장에도 183명의 취재진이 빼곡히 들어찼다. 박 전 대통령이 차량에서 내려 법원 현관으로 들어오자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감색 정장에 검은색 구두를 신고, 올림머리를 한 모습은 검찰 소환조사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50 걸음 남짓 걷는 동안 표정은 순식간에 경직됐다. 한 경호원이 박 전 대통령의 앞에 서서 입장해 곳곳에서 "비켜" "나와"라는 카메라 기자들의 항의가 터져 나왔다.


포토라인 다가서자 표정 얼어붙어


포토라인에 접근했을 때 취재진이 "국민께 어떤 점이 송구하느냐" "뇌물 혐의 인정하느냐" "세월호 인양하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눈길을 피한 채 아무 대답 없이 계단을 이용해 한 층 위에 있는 321호법정으로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호원이 동선에 설치된 취재진의 마이크를 손으로 치워 항의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전 대통령 측은 전날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피하기 위해 법원 지하 구치감에서 법정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이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원이 이를 거부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여타 국정농단 사건 공범들과 똑같이 청사 외부 출입문을 이용해 법정으로 향했다. 40년 지기에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끌어내린 ‘비선실세’ 최순실도 같은 길을 걸었다.


"박근혜 구속하라" "게엄령 선포하라"


영장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법원 주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 뒤엉켰다. 퇴진행동 법률팀장 권영국 변호사는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 "돈을 준 자보다 돈을 받은 자의 죄가 훨씬 더 무겁다"며 "몸통을 구속하지 않고서는 법 앞의 평등을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청문 인근에 모인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김수남 검찰총장을 구속하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계엄령을 선포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법정에는 유영하, 채명성 변호사 등 변호인 2명과 한웅재·이원석 부장검사 등 검찰 측 6명이 출석해 격한 법리공방을 벌였다. 박 전 대통령도 직접 나서 본인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강부영 영장전담판사 정면 증인석에 위치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법원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 진술시간 넘겨…역대 최장


격렬한 공방이 쉴틈 없이 오가는 중에도 틈틈이 쉬는 시간은 있었다.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된 심리는 오후 1시6분쯤 잠시 중단됐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정 옆 대기실에서 1시간정도 휴식을 취하며 변호인들과 함께 김밥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심리는 2시7분부터 재개돼 4시20분까지 진행됐으며, 이후 15분 동안 휴정된 뒤 다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의 진술은 오후 7시12분 종료되면서 이 부회장의 진술 시간인 7시간30분을 넘기면서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홍연·조용훈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