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강명연

대·중소 갑질문화 개선 목소리 봇물

롯데그룹 협력업체들 피해 호소…징벌적 손해배상 통해 사전 방지 필요

2018-05-19 09:30

조회수 : 7,913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갑질을 일삼는 사례들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피해 협력업체들이 공동 대응을 선언한 가운데 공정거래법 집행 강화장치를 마련하는 등 관련 법제도 정비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17일 롯데갑질피해자연합회는 국회에서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갑질 사례를 발표하고 더 많은 피해사례를 접수해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롯데갑질신고센터를 열어 피해자 신고를 받기기로 했다.
 
롯데로부터 피해를 입은 업체들은 원가 이하의 납품 요구, 물류비·인건비 떠넘기기는 물론 납품업체 몰래 과다한 판매수수료를 떼어가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롯데슈퍼에 과일을 납품한 보성청과는 롯데와 15% 수수료 계약을 맺고 거래했으나 롯데는 이를 무시하고 2013년 6월까지 25% 수수료를 떼어갔다는 게 업체 주장이다. 이러한 사실을 2013년에서야 알게된 업체 대표는 롯데에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하지만 롯데는 25%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의 조작된 서류를 공정위에 제출했다는 게 업체 주장이다. 보성청과를 운영하던 김정균 대표는 "롯데가 25% 계약을 주장하며 제출한 서류에는 사업자번호가 틀릴 뿐만 아니라 자필서명이나 간인도 없어 위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민사재판에서는 롯데의 잘못이 인정됐지만 형사재판 담당 검사는 처음에 계약서가 이상하다고 말한 뒤 이후 이를 번복했다. 원본 자료가 있는데 답답하다"고 말했다.
 
2008년 롯데건설과 하도급계약을 맺었던 아하엠텍은 공사 계약금액 127억원 가운데 25억원만 지급받았다. 롯데건설은 당시 현대제철로부터 일관제철소 화성공장 공사를 수주한 뒤 일감의 일부를 아하엠텍에 2차 도급을 줬다. 하지만 롯데건설은 2009년 연말 부족한 실적을 메꾸기 위해 현대제철과 300억원대 계약을 230억원에 앞당겨 합의한 뒤 피해본 금액을 아하엠텍에 전가했다는 게 아하엠텍 대표의 설명이다. 안동권 아하엠텍 대표는 "현대제철은 롯데건설에 무리하게 합의하지 말라고 했지만 롯데가 이를 밀어붙인 뒤 우리 회사를 망하게 만들었다"며 "1995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성장하며 코스닥 상장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롯데와 처음 거래한 계약에서 회사가 무너졌다. 기존에 거래를 맺었던 다른 대기업 건설사들이 왜 악명높은 롯데와 거래했느냐며 결제대금을 미리 내줄 정도로 비상식적인 일을 롯데가 벌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2004년 롯데상사와 합자회사를 설립했던 가나안RPC는 롯데의 약속 파기로 빚더미에 앉았다. 롯데상사는 품종과 재배기술이 우수한 가나안 쌀을 확보하기 위해 가나안RPC에 투자를 제안했고, 월 2500톤 규모의 쌀 매입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롯데는 투자금액을 전부 가나안RPC에 떠넘기고 쌀 매입도 약속했던 규모의 0.02% 수준에 그쳐 사실상 거의 매입하지 않았다. 김영미 가나안RPC 대표는 "우리 회사는 원래 현대백화점이나 뉴코아아울렛 등 크고 작은 마트와 분당 직매장을 통해 유통하고 있었고, 정부의 창업투사회사로 지정돼 회사를 키워나가는 상황이었다"며 "롯데는 시설 투자를 약속하며 접근했고, 계약서상 자금투자를 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농기계회사에서 우리 회사에 외상을 주게 만들어 88억원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쌀도 구매하지 않아서 수매 계약을 맺은 농가와 매일 롯데 본사를 쫓아다니며 항의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롯데의 횡포에 못 이긴 업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에 호소했지만 결론은 대부분 롯데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아하엠텍의 안 대표는 "공정위는 2011년 심사보고서에서 113억원의 미납대금 지급 명령을 내리고 롯데건설에 과징금 32억원과 벌점 3점 등의 처분을 명시했지만 최종 심결에서 미납대금 49억원 지급만 처분했을 뿐 나머지는 무혐의 또는 경고 처분을 내렸다"며 "2014년에는 아하엠텍 사건을 수임한 김앤장이 롯데의 '형제의 난' 사건 수임 후 아하엠텍 담당 변호사를 해임했다"고 말했다. 보성청과의 김정균 대표는 "공정위는 사업자번호가 틀리고 사인과 간인이 없는 서류에 대해 우리쪽에 위조서류임을 증명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대·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 폭로 이전에도 꾸준히 있었다. 지난해 국내 최대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은 농가에 위탁해 닭을 키우면서 적정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된 뒤 조사를 받고 있다. 생과일 전문점 쥬씨는 부자재 가격을 인하하며 가맹점과의 상생을 홍보했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와 신선도가 떨어지는 과일을 공급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롯데홈쇼핑 대표와 임원들이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유죄를 선고받았다.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해 더욱 강력한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국회의원들은 관련 법안을 줄지어 발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대표발의한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대규모유통업법)'은 공정위의 조사권과 고발 요청권, 조정권을 광역 지자체에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 발생시 신속 대응하고 적절한 구제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발의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가맹업법)'은 가맹본부가 가맹사업자에게 비용 부담을 줄 경우 사전 동의를 받게 하고 이를 위반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은 홈쇼핑방송 사업자가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하면 이를 재허가 또는 재승인 심사에 반영되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 외에도 사전적 규제 성격이 강한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공정거래가 적발되면 기업이 유지되기 힘들 정도의 처벌을 가해 피해를 미리 예방하는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 필요성에도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공정위 제재는 대부분 과징금 형태여서 국고로 환수되기 때문에 피해업체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책이 될 수 없다"며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거래관계가 끊기는 것이 가장 큰 피해다. 업체들은 소송을 감수할 정도의 이익이 있을 때 소송으로 갈 수 있는데 현재는 회사가 망할 위기에 이르러서야 공정위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 기업 입장에서 거래가 단절되도 상당한 보상을 받고 다른 거래처를 찾을 수 있을 만큼의 피해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가해기업은 불공정거래가 발각될 경우 망할 수 있을 만큼의 제재를 가해서 사전에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법안들이 발의되는 것도 이러한 필요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17일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롯데갑질피해자연합회 소속 업체 대표들이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롯데그룹의 갑질 사례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 강명연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