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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연

"2차 피해 우려되는데 정부 대처 안일"…라돈침대 피해자들 '분통'

문제 침대 8만개 중 수거된 300개 외 파악 안돼…"핵폐기물 집안에 들어놓은 셈" 원안위 담당자 불참

2018-05-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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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방사능 물질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2차 피해가 우려돼 침대를 함부로 버릴 수도 없다. 핵물질과 같이 사는 피해자들의 심정을 안다면 정부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1급 발암물질 라돈이 검출된 대진 침대 사용자들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일한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1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이 라돈 침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마련한 간담회에서 간담회 참석자와 피해자들은 "기준치를 초과하는 라돈이 측정된 침대는 방사성폐기물로, 주무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 관리 하에 신속하게 수거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원안위는 이달 초 문제가 불거진 이후 사실상 2주 넘게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 원안위 내 담당부서 책임자가 불참하면서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피해자가 "기준치 초과 라돈이 검출된 침대가 8만개로 확인되고 있는데 리콜은 겨우 300개가 됐다"며 나머지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묻자 원안위의 국회담당 사무관은 "확인이 아직 안 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 피해자는 "우리는 부부와 아이들까지 합쳐서 문제가 된 침대 3대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피폭이 되고 있는데, 원안위나 정부가 우선순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제3의 피해가 우려돼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는데 수거가 우선이다. 피해보상 등은 나중에 해결할 일이라는 점을 정부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들 역시 정부가 문제된 침대를 신속하게 회수조치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구에서 온 다른 피해자는 "침대를 빨리 치워야 할 것 같아 원안위 센터에 전화했는데 받질 않고, 환경부에서는 생활폐기물부서로 연결됐지만 1차 조사 결과에서 기준치 미만이라는 발표가 난 것만 알고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며 "광진구에서는 대진침대를 수거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나왔다. 원안위에서 업체에 수거 명령 행정조치를 했으면 실태조사를 해서 대진침대에서 수거할 여력이 안되는지 보고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라듐 방출물질로 지목되는 모나자이트에서 토론과 라돈 외에 다른 유해물질이 방출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원안위는 입을 닫으려 했다. 폐손상 외의 다른 질병에 대한 원인 규명은 안 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또 다른 피해자는 "원안위는 라돈과 토론만 말하고 있는데 피해자 카페에서는 다양한 질병들이 거론되고 있다"며 "라돈과 토론 외에 다른 물질도 발생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두 물질에 대해서만 말하니까 감추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 나오신 진영우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 소속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을 때 폐만 문제라고 했는데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 센터장이 "다른 성분이 나오면 체크해야 한다"고 말하자 김혜정 원안위 비상임위원이 "우라늄과 토륨이 함유된 모나자이트에서 라돈만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감마선도 나온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이에 대한 피해자 조사와 실태조사가 필요한데 쉽게 말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질병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안위 측 입장에 대해 오히려 산업계 등에서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피해자가 "류마티스에 걸렸는데 자가면역질환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다른 질환을 호소하고 있는데 방사성물질이 질병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 전문가가 아닌 피해자들이 입증하기 힘들고 그에 따라 보상도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범위를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진영우 센터장은 "폐손상 외에 많은 분들이 호소하는 다른 질병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등록해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모든 증상이나 질환을 전부 증빙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며 "의사들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에서는 의학적 확인이 안 됐다는 이유로 몇 년씩 토론해도 결론을 못 내리고 있고, 그 사이 기업들은 기뻐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입증 책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제조사들이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부분을 반증해보는 등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입증책임의 문제가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피해 대책을 논의하는 이날 자리에 책임 있는 발언을 할 담당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피해자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원안위 관계자로 참석한 김혜정 원안위 비상임위원과 진영우 원안위 비상진료센터장은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피해자들과 노웅래 위원의 질타가 있고 나서야 뒷자리에 배석해 있던 박성준 국회 담당 사무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원안위 담당자나 책임자급이 국무회의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힌 데 대해 피해자들이 항의하며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최한 노웅래 의원은 "행정안전부나 국무총리실 차원에서 수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부분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며 "이번 사안은 환경마크를 준 환경부를 포함해 보건복지부, 식품안전천의약청 등 여러 부처들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국무조정실에서 회의하고 있다. 현재 국회 여건상 여야 차원의 대책 마련은 힘들겠지만 당 차원에서 감시 노력을 계속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원안위가 특정 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이 허용 기준치 이내라고 발표했다가 닷새 만에 뒤집었다"며 "정부가 국민의 불안을 가중을 불안시켜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한편 이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한국YMCA전국연맹 등 11개 회원단체는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관 앞에서 라돈 침대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전문적인 상담과 피해보상 창구 마련 등의 대책을 주장했다.
 
21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한국YMCA전국연맹 등 11개 회원단체가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관 앞에서 라돈 침대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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