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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권일

지금은 '임'의 세상이다?

2018-10-30 13:40

조회수 :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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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임’의 세상이다.” 올해 저녁자리에서 많이 들려오던 말이다. ‘임’은 문재인대통령의 최측근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일컫는 시중의 은어다. 이름 석자를 축약해 그냥 ‘임’으로 통한다. 대학생 때는 운동권 출신인 전대협 의장을 맡아 수배를 피해 이쪽에 번쩍, 저쪽에 번쩍 나타나 대학생들의 호위까지 받고 유유히 사라져 홍길동 아닌 ‘임길동’으로 불렸다. 조국통일운동을 벌이며 386세대의 상징격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재선의원을 지냈고, 이후 서울시정무부시장으로 일하다 문재인캠프에 합류해 정권 출범에 기여한 ‘실세’다. 정치인 시절과 비서실장 시절, 그를 만난 적이 있는 필자는 지금은 임의 세상이란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주 터무니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란 본래 말로 하는 전쟁이고, 정치의 본질은 권력의 쟁투이기 때문이다.     
 
임 실장은 문재인정부의 정책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북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그는 북한 정권의 실세인 김여정과 만나 남북을 오가는 정상회담의 물꼬를 텄다. 지난 17일에는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청와대를 벗어나 강원도 철원의 ‘남북 공동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과거 정부의 비서실장과는 다른 모습이자 힘센 실장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다.   
 
30일자 조간신문을 보면, 29일 한국을 방문 중인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임 실장을 1시간 가량 만난 사실이 주요 기사로 실렸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그리고 2차 북미회담 진행 사안에 대해 심도깊은 대화가 오갔다”는게 청와대 전언이다. 하지만 언론은 미국 쪽 요청으로 이뤄진 비건과 임실장의 만남 자체가 아주 이례적이라고 보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등 외교·안보에 관한 사안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주된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언론인 한겨레는 이를 두고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한-미간 이견 조율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을 것”이라며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 연동된 만큼 이에 관해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반면, 조선일보는 “남북 경협, 대북 제재 완화 등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표출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 진의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남북 관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임 실장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종석실장(왼쪽)은 이낙연총리와 함께 호남출신 차기대선후보에 오르내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다. / 사진 뉴시스
 
 
언론사의 성향에 따른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임실장이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를 위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선 경쟁자들의 빌미를 사게 되고, 확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강원도 철원을 방문한 임 실장을 두고 “비서실장이 왜 국가정보원장과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을 부하 다루듯 대동하고 전방을 시찰하며 패권 정치의 폐단을 보이느냐. 국민은 또 다른 차지철, 또 다른 최순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으니 자기 정치를 하려면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했다. 임 실장이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고 공격한 것이다. 손 대표의 말이 존재감없는 야당 대표의 ‘주장’에 그칠지라도 정치권의 촉수는 늘 권력다툼에 예민하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굳이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 물론 그것을 뛰어넘는 명분이 있다면 또다른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임 실장이 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지 않고, 여당의 정치인으로 다시 복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 시점을, 빠르면 내년 상반기로 보는 이들도 있다. 전남 장흥 출신인 그는 전남 영광출신으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낙연 총리와 함께 호남출신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차기 대선 주자군에 꼽힌다. 달은 차면 기우는 법이다. 자신에 대해 힘이 세다는 소리가 세상에 들린다면 겸손해져야 할 때라는 선현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치를 재개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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