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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멜로가 체질’이 체질이었던 우리

2019-10-02 15:29

조회수 :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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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드라마. 주로 연극에서 ‘극중 극’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아, 연극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드라마라고 하면 주로 TV 드라마를 뜻하니까, 드라마를 찍는 드라마를 말하고자 합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메타드라마는 ‘드라마의 제왕’ 밖에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 드라마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 아니라, 메타드라마라는 것을 제목을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JTBC ‘멜로가 체질’은 2019년 하반기에 방영된 메타드라마입니다. 방송국 드라마 PD인 손범수(안재홍 분)가 드라마 작가 임진주(천우희 분)를 만나 드라마를 만들고 사랑하는 내용이죠. 다들 “한국 드라마가 다 그렇지. 방송국에서 연애하는 내용이 뭐가 재밌냐”고 반문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렇게 평한 사람들 대부분이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였습니다.
 
‘멜로가 체질’은 1회 1.8%의 시청률을 기록 후 이렇다 할 반전도 없이 1.8%로 종영했습니다. 영화 감독이었던 이병헌이 연출을 맡았고, 천우희가 나왔고, 안재홍이 나왔고, 둘이 연애를 하는 내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영화 하는 친구들은 독립 영화에서 이름 좀 날렸던 전여빈이 출연한다고 해서 기대했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삶이 제게는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거든요. 드라마 PPL 담당자인 황한주(한지은 분)의 고군분투기는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작품 뒤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제 친구들 같았습니다. 손범수의 인터뷰에서 자극적인 말만 골라 기사 제목으로 넣는 한 잡지사 기자도 오묘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메인 작가의 성격을 받아내며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도 친숙했습니다.
 
14회는 독특한 PPL 형식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손범수(안재홍 분)가 드라마에 넣을 PPL을 고민하고 상상하는 장면을 통해 노골적으로 제품을 노출시켰죠. 하지만 불편감을 안겨주기보다는 웃음을 자아냈고 신선했습니다. 메타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발칙한 승부수였습니다. PPL에 고민하던 한 PD도 제게 “나도 메타드라마나 만들어야겠다”는 푸념을 늘어놨습니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작품입니다. 종사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고, 몇몇 캐릭터는 다큐멘터리 감독, 배우 기획사 대표 등으로 직업만 바뀌었을 뿐 매우 친숙합니다. 심지어 ‘실존인물 A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전 여자친구가 만든 노래가 히트해 곳곳에서 울려 퍼지자 괴로워하는 손범수의 모습도 지난주 술자리에서 본 누군가와 닮아있었죠.
 
그 외에도 이은정(전여빈 분)이라는 캐릭터의 성향을 내세워 은근슬쩍 꺼내는 페미니즘 이슈, 이효봉(윤지온 분)과 문수(전신환 분)의 로맨스가 띄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 등도 신선했습니다. 이병헌 감독은 참 의뭉스러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실, ‘멜로가 체질’은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종영 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업계 밖에 있는 친구들도 하나 둘 정주행을 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물론 ‘멜로가 체질’을 재미 있게 보겠지만, 이 드라마를 100% 즐길 수 있는 시청자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저는 충분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그들을 귀찮게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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