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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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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입니다.
'날씨의 아이' 흥행 실패, 관객탓으로 돌리지 마라

2019-11-06 17:33

조회수 :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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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날씨의 아이' 영화사 측으로부터 황당한 입장문을 받았습니다. '[공식입장문] 안타까운 시대 속 영화 '날씨의 아이'를 개봉하기까지'라는 제목의 메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오랜시간 고민해 국내 개봉을 확정지은 작품이 생각보다 흥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니, 다시 말하면 '징징'거리고 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주말 스코어를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 '너의 이름은'에 비교하며 얼마나 처참한 성적인지 본인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죠.
 
그들의 말에 거짓은 없습니다. 개봉 후 첫 주말 '날씨의 아이'를 관람한 사람들은 33만 7000여 명. 전작보다 70% 하락한 수치입니다. 같은 시기에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는 93만 7639명, 2등인 '82년생 김지영'은 68만 2357명을 동원했습니다.
 
미디어캐슬 공식입장문
 
'날씨의 아이' 측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로지 영화 자체에 대한 불만족, 완성도에 대한 이슈만으로 이 차가운 현실을 만난 것이라면 최소한의 위로가 되겠지만, 과정을 돌이켜봤을 때 그렇지 않았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대한민국에서 영화 좀 본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핸드폰에 반드시 깔려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바로 '왓챠'입니다. 5억여 개의 리뷰가 쌓여있는 이 어마어마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날씨의 아이'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요?
 
왓챠
 
왓챠에서 '날씨의 아이'를 평가한 사람은 총 5032명. 평균 별점 3.2점입니다. (참고로 저의 평균 별점은 2.8점으로 나왔습니다. 실제로 매긴 평가 점수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여기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맥없이 재활용하는 전작의 모티브들, 심지어 단점까지도"라고요. 이외에도 "신카이 마코토가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불리는데, 이건 하야오에 대한 모욕이다", "때깔만 좋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코멘트가 있습니다.
 
저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작화, OST, 현실 고증을 빗댄 스토리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특유의 작위적인 감성과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들의 행동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개봉 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은 더 논란입니다. 영화에서도 일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여성 캐릭터의 신체 일부를 성적대상화한 부분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쓰자면 이렇습니다. "새하얀 피부에 촉촉하고 커다란 눈동자에 어깨, 허리, 다리가 모두 가늘었다. 그래서 풍만한 가슴이 더욱 도드라졌다.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는 중학생처럼 달콤했다. 뭐랄까, 러브돌이나 더치와이프(여성의 모양을 본뜬 남성용 성기구) 같다고나 할까. 이게 웬 추잡한 상상인지 뜨악했지만 그녀를 보노라면 그 생각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영화 '너의 이름은' 스틸
 
신카이 마코토는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도 비슷한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여성 주인공 마츠하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담아냅니다. 영혼이 바뀐 캐릭터는 놀라며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 위해 속옷만 남기고 다 벗은 뒤, 가슴을 양손으로 주물거립니다. 이후에도 타키는 미츠하의 몸으로 깨어날 때마다 가슴을 만집니다.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으로 바뀐 마츠하도 비슷할까요? 전혀 다릅니다. 누워있는 모습을 그저 정면으로, 평범하게 비췄습니다. 추가로 이어지는 노출 장면도 없이, 매우 정직한 잠옷 디자인입니다. 이 두 캐릭터의 차이점에 논란에도 신카이 마코토는 "가슴 장면을 넣길 참 잘한 거 같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언어의 정원'을 보지 않았습니다만, '날씨의 아이'를 본 저의 지인은 영화를 보고는 "신카이 마코토는 가슴 집착증이 있는 것 같다. '언어의 정원' 코멘터리에서도 '일부러 야하게 연출했다', '가슴을 부각시켜서 그렸다'고 했다"더군요. 실제로 코멘터리 영상을 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영화 '날씨의 아이' 공식 포스터. 사진/미디어캐슬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크게 흥행하는 영화를 뽑자면 앞서 언급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와 '82년생 김지영'입니다. 두 작품 모두 여성 서사를 뚜렷하게 담고 있고,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들을 '성적대상화'로 단순하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호감을 사고 있습니다. 
 
9월 11일. 이들에게 받았던 공식입장문이 다시 한 번 생각납니다. 이들은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제재 압박에 의한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국민적 정서와 사회적 분위기를 존중하겠다는 생각을 갖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디어캐슬 공식입장문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겸허히 생각하고 있다. '콘텐츠를 콘텐츠로만 소비해달라'는 주장도 감히 하지 않겠다. 지금의 사회상에 비추어 볼 때 조금이라고 불편하게 느껴지신다면 얼마든지 질책해달라"고요.
 
네, 관객들은 '날씨의 아이'를 보고 불쾌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너의 이름을'보다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고, 여성 캐릭터의 획일화된 소비성에 대해 지루함을 느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 신카이 마코토가 급하게 내한 기자간담회를 연다고 했을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내내 신카이 마코토는 그저 즐거워하는 눈치더군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는 배급사 잘못이니 나의 탓은 아니다"라고요. 대중들이 '날씨의 아이'를 보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홍보 때문이라는 그의 마인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조금 더 정확한 수치를 들어볼까요? 지금까지 국내에 개봉된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는 총 6편. 그 중 '너의 이름은'의 총 관객수는 367만 3885명입니다. '날씨의 아이'는 33만 7152명입니다. 10분의 1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하지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4105명, '초속 5센티미터'는 2만 1448명, '별을 쫓는 아이'는 5만 2508명, 언어의 정원은 5만 1337명입니다. 평균값 69만 73명. 중간값은 5만 1923명입니다.
 
배급사 측의 수치도 살펴보겠습니다. 미디어캐슬은 지금까지 22개의 작품을 배급했습니다. 그들이 배급한 작품 중 가장 흥행한 것은 역시 '너의 이름은'입니다. 두번째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46만 5495명)고요. 그 다음이 '날씨의 아이'입니다. 개봉 첫주만에 3위를 기록했음에도 '흥행에 실패했다'고 호소하기에는 의아합니다. 관객수가 423명이던 '진구세주전설 북두의 권 제로 - 켄시로전'같은 영화도 배급했는데, 어째서 '날씨의 아이'에 대해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배급사와 신카이 마코토는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요? 참고로 이런 배급사의 공식입장문은 중앙일보가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 웹사이트 '야후'에 보도했더군요. 또 다시 일본인들에게 먹잇감을 준 셈입니다. 단순히 이런 추잡한 짓을 노린 것이라면, 참 성공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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