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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법무부 공소장 비공개에 "관행 자체 잘못" vs "알 권리 제약"

"언론 공표되면 중계방송하는 것 아닌가" 지적

2020-02-0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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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법무부가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비공개로 결정한 것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법무부의 견해대로 인권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처란 주장과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될 것이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5일 "범죄 사실만 요건에 맞게 정상적으로 작성된 공소장이라면 모르지만, 피의자신문조서 그대로 전후 상황까지 검찰의 주장을 잔뜩 기재한 공소장 관행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아마도 사건과 직접 관계없는 내용이 많고, 사생활에 저촉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소장 공개를 거부하는 시점이 의심받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공소장이 언론에 공표되면 중계방송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그것은 사실이 아닌데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효과를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시국 사건을 보면 공소장 200장~300장에 필요 없는 내용으로 '빨갱이가 맞다'는 내용의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며 "사생활 등이 낱낱이 보도되고 각인이 되면 판결이 나와도 되돌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국제 변호사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고, 법무부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소장은 검찰의 입장이지 않나"라며 "공소장이 공개되면 검찰 입장만 기사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상대방의 주장도 다 들어가야 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공표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부연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 참석해 당부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대로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관련 법률에 따라 사생활이 들어 있는 정보를 삭제하고, 공소장을 다 제출해 왔다"며 "공소장이 비공개되면 언론의 취재가 막히니까 알 권리 침해와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법무부가 내놓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란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며 "기존 관례와도 어긋나고, 국민의 알 권리와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미 기소가 된 사안인 만큼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보호는 법무부가 아니라 재판부의 역할"이라며 "청와대 전직 주요 공직자가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란 점에서 사건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보호나 피의사실 공표 우려가 국민의 알  권리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사건과 관련된 사실관계 등은 그동안 수사 중이란 이유로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중대한 범죄가 있었는지,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어차피 재판이 시작되면 공개될 사안이고, 이미 기소가 된 수사 결과란 점에서 국회와 국민에게 공개해 사건의 실체는 물론 검찰 수사 자체에 대해서도 국민이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불구속기소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일 "국회의 '울산시장 등 불구속기소 사건' 공소장 제출 요청에 대해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 수사 진행 중인 피의자에 대한 피의사실공표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소장 원문은 제출하지 않되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소사실 요지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추미애 장관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의원실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제출된 자료가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며 "이런 잘못된 관행으로 국민의 공개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형사 절차에서 여러 가지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 차례 숙의를 거쳐 더는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의논을 모았다"고 이번 비공개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난해 12월1일자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도 만들었고, 이는 법무부령"이라며 "법무부가 만들어 놓고 스스로 지키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국회가 제출한 요구 자료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 제출 취지에 맞춰 제출하도록 했다"며 "앞으로 공소장에 대해서는 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공개된 재판에서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자료에 의해 알려지는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이번 선거 개입 수사와 관련해 지난달 29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한병도 전 정무수석비서관, 황운하 전 대전지방경찰청장, 송철호 울산시장,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송 시장은 지난 2017년 9월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인 황 전 청장에게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를 청탁했고, 황 전 청장은 그해 10월부터 해당 수사를 진행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친 혐의를 받고 있다. 백 비서관은 송 전 부시장으로부터 받은 비위 정보를 재가공한 범죄첩보서를 그해 11월부터 12월까지 박 비서관을 통해 경찰청, 울산지방경찰청 등에 하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선거 개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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