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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대법, '대작 논란' 조영남 무죄 확정(종합)

"작품 제작시 '보조자 사용 여부'는 구매자들에게 필요한 정보 아니야"

2020-06-2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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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이른바 '그림 대작' 논란으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번 사건은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상황에서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한 최초 사례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혐의로 기소된 조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미술작품 제작에 2명 이상의 사람이 관여한 경우, 이를 작품 구매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줘야 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또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그 작품이 친작(親作)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되었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가수 조영남씨의 '그림 대작(代作)' 사건 상고심 주심 대법관인 권순일(왼쪽 두번째) 대법관이 지난 5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은 특히 "검사가 상고심에 이르러 원심판결에 저작자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불고불리 원칙'은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에 대해서만 심리·판결한다는 원칙이다. 결국 검찰이 하급심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핵심 쟁점을 벗어난 이유를 들어 무리하게 상고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조씨가 언론 인터뷰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노출시켰고, 피해자들인 그림 구매자들과 잠재적인 대중들이 조씨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믿게 함으로써 묵시적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이에 대해 명시적으로 다투지 않았지만 2심은 "피해자들이 착오를 일으킨 계기 혹은 경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검찰의 공소가 피고인의 작위에 의한 기망행위(그 중 소위 묵시적 기망행위)에 터잡아 제기됐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공소사실의 주된 내용인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와 양립한다고 해석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구매 당시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이 사건 미술작품이 조씨의 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더라도, 피해자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 "조씨 아닌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해 판매했다는 등 이 사건 미술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조씨에 의해 기망당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5월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미술작품의 저작권이 대작화가에게 있기 때문에 조씨는 저작권자로 볼 수 없다"면서 "조씨가 조수를 이용해 미술작품을 제작한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알려줘야 할 고지의무를 위반해 구매자들을 속였다"는 논리를 이어갔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해자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고, 피고인 조영남이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해 판매했다는 등 이 사건 미술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니었다"며 "따라서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피고인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대작화가 송모씨 등에게 주문한 그림에 약간 덧칠을 해 구매자 17명에게 그림 21점을 팔아 1억535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6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1심은 고지의무를 인정, 2017년 10월 조씨에게 "피해자들에게 충격과 실망감을 안겼고 문제가 불거진 후에도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사려깊지 못한 발언으로 미술계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했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작품 구매자들에게 조수를 사용한 여부가 작품 구매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지만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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