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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극 강간범' 2심, 미필적 고의가 유무죄 가른다

검찰, 피고인 '범의' 입증 관건…대법원 성범죄 엄벌 추세 주목

2020-08-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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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상황극이라는 말만 믿고 생면부지의 여성을 성폭행하고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남성에 대한 항소심이 시작된다. 항소심에서도 피고인이 실제 강간을 저지를 고의가 있었는지가 유무죄를 가를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부 이준명)는 12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 강간과 절도 혐의를 받는 오모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 기일을 연다. 
 
채팅 앱에서 글을 보고 상황극으로 오인해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오모씨에 대한 항소심이 12일부터 시작된다. 사진은 서울 중랑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압수한 채팅 앱 이용 범죄에 사용된 휴대폰들. 사진/뉴시스
 
오씨는 지난해 8월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프로필을 '35세 여성'으로 꾸민 후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는 글을 올린 남성 이모씨에게 속아 세종시 한 원룸에 살던 여성을 실제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쟁점은 오씨가 상황극이 아니라 실제 강간임을 알면서도 실행했는지, 즉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것을 뜻한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용찬)는 오씨에게 고의가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강간 상황극을 충동질한 이씨 속임수에 넘어가 일종의 강간 도구로만 이용됐을 뿐 범죄 의도는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 여성이 연기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반항이 심하지 않았던 점 △피해 여성이 방문자를 착각해 문을 열어준 점 △오씨가 실제 범행이라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던 점 △원나잇(하룻밤) 상대를 찾는 채팅 앱에서 상대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성폭행 피해는 있지만 행위자는 책임이 없다는 선고 결과에 '제대로 선고하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항소심에서 오씨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유무죄 판단이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법조계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실제 범행일 수도 있지만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는 점을 짚었다. 성범죄 사건을 다수 맡아온 한 변호사는 "성폭행이 상황극이 아니라 실제 범행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했는지는 성폭행을 교사한 이씨도, 피해자도 모르고 오직 피고인 본인만 안다"면서 "피고인이 일관된 진술을 하면 재판부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소심에서 결과를 뒤집으려면 검찰이 고의를 증명할 추가 증거를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황극을 하기로 약속한 게 맞는지 확인하지 않은 점, 피해자 휴대폰을 빼앗아 강가에 버린 점 등이 위법성 조각사유(형식적으로는 불법이나 실질적으로는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사유)로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테헤란의 이수학 대표변호사는 "심리에서 나온 증거, 증언 등을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오피스텔에 도착해 피해 여성을 만났을 때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이 위법성이 조각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반항이 심하지 않아 연기인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등의 법원 판단은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형사사건 전문인 법률사무소 청의 곽준호 대표변호사는 "채팅 앱으로 만나 성폭행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감자탕을 덜어줘 호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벗기는데 여성의 도움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1심이 항소심에서 바로 뒤집히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성범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 등을 보면 피해자 중심으로 점점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뒤집힐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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