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카시오페아’, 그래도 서현진의 압도적 연기는 건졌다
알츠하이머 환자 통한 기억의 소멸 그리고 삶과 관계의 변화 ‘주목’
서현진 ‘압도적’ 연기력 통한 기억과 삶의 변화 표정+감정 표현력↑
입력 : 2022-05-23 00:02:03 수정 : 2022-05-23 00:02:0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카시오페아가 이끌어 낸 변주는 딱 하나, 고정 관념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 있는 독립영화 여러 편을 만들어 낸 신연식 감독 솜씨라 하기엔 의외로 플랫(flat)한 느낌이 강하다. 영화적 미학(미장센)을 극도로 제한시키고 얘기에 힘을 주고 싶던 듯하다. 그런데 반향적 느낌이 강하다. ‘카시오페아는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눈물을 흘리라 만든 결과물이다. 그걸 부정하고 변명하고 아니다고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만약 목적성이 그게 아니라면 카시오페아는 오히려 지금 결과물보다 더 건조하게 바짝 말려 버렸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방향을 잃었을 때 길을 찾아가는 키(key)로 삼아왔던 카시오페아별자리를 주제성에 녹여 내 알츠하이머 환자와 그들 가족 그리고 그 관계성에 오는 어떤 사실을 주목해 보려 했을 듯싶다. 하지만 남은 것은 적당한 눈물과 적당한 감동 그리고 그 적당함에 조금 미치지 못한 공감 정도. 알츠하이머 환자 가족들에게조차 이 정도 에피소드는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의도라고 설명하기엔 너무 깊이가 얕다. 신연식 감독이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필모그래피를 훑어 보자면 카시오페아깊이는 너무 아쉬움이 크다.
 
 
 
수진(서현진)은 변호사다. 한국에서 홀로 딸 지나(주예림)를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맘. 이혼한 남편은 미국에 거주 중이다. 지나는 딸 교육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사회적으로 성공의 개념에 포함된 직업을 성취한 자신을 딸에게도 투영시키는 교육열 강한 엄마다. 그는 딸의 미국 유학을 위해 이런 저런 정보를 알아보면서도 자신이 출근하는 법무법인에서 맡은 일을 소리 나게 처리한다. 그리고 수진의 아버지 인우(안성기)는 서울 근교에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인우는 가끔씩 딸 수진의 요청에 손녀 지나를 보살피고 등·하교를 담당하는 정도. 보통의 삶이다. 너무도 흔한 삶이다.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딸과 아버지 그리고 손녀까지. 3대가 살아가는 그들 가족. 공통점이라면 결핍. 수진에겐 남편이 없고 지나에겐 아빠가 없고 인우에겐 아내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더 의지하고 더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씩 그런 노력이 상처를 준다. 수진이 요즘 따라 그렇다. 자꾸만 감정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건망증도 점점 심해진다. 괜스레 아빠 인우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던 딸 지나에 대한 문제를 두고 심하게 쏘아댄다. 이미 인우는 그걸 잘 처리한 뒤인데 말이다. 요즘 너무 이상해진 수진이다. 그리고 수진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러면서 수진이 변했던 이유가 이들 가족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초로기 치매, 즉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수진의 일상은 이 지점부터 균열되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무너진다. 당연히 자신의 변화를 받아 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변화는 수진을 조금씩 좀 먹어가기 시작한다. ‘완벽하다자부한 수진은 자신의 일상이 일그러져 가고 무너져 가는 것에 간신히 붙잡고 버티던 자아마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수진을 곁에서 붙잡고 보살피는 인우의 삶도 버겁고 힘들다.
 
결말로 흘러가는 방식도 그리고 결말에서 드러나는 마침표도 모두 예상 가능하다. 풀어가는 방식과 그 방식이 만들어 낸 감정의 결이 너무 흔히 접해 볼 수 있는 그것들이다. 강요되는 눈물은 아니다. ‘알츠하이머란 질병 자체가 갖는 소멸돼 가는 기억은 관객들에게 눈물보단 안타까움에 대한 불가항력적 강요를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기억의 사라짐은 수진을 가장 무섭게 만드는 공포의 근원이다. 실질적으론 병이 아닌 기억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담은 오롯한 삶의 그릇을 스스로가 알아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병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그것을 경험해 나가면서 스스로가 변화되는 지점의 순간을 스펙트럼화 시켜가는 무너짐이 사실 가장 안타깝고 본인에겐 체감의 공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체감의 공포는 그 공포조차 느낄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를 것이란 기다림이다.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이런 모든 순간이 배우 서현진의 연기로 만들어 진다. 그의 연기 하나만큼은 카시오페아속 배우의 작화가 아닌 오롯하게 수진이란 인물로만 남아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초로기 알츠하이머 진행 속도에 맞춰 서현진은 수진의 무너짐을 그려나간다. 일상의 수진에서 병의 진단 이후 수진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미묘한 표정 변화는 압권이다. 병 진행 중반 이후에는 표정 밑에 숨은 감정이 분명 느껴지지만 그걸 들춰내지 않는 얼굴이 스크린을 채워버린다. 분명 존재하는 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서현진의 연기는 카시오페아에서 만큼은 어떤 경지에 올라선 듯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안성기의 연기는 그런 서현진의 연기를 위한 계산된 연출로 인식될 정도다. 감정의 파장이 튀어 오르는 걸 눌러주는 안성기의 존재감이 묵직하다.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하지만 카시오페아는 앞선 설명처럼 특별하진 않다. 배우들 연기가 그 특별하지 않음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전체의 톤 앤 매너가 꽤 진부하다. 전체적 스토리 라인 구성과 플롯 배치가 상당히 작위적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게 카시오페아의 감동을 그저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마지막 엔딩 시퀀스는 이런 모든 것의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도 덮어 버리는 전형성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연식 감독 연출 구성이라고 하기엔 뻔한 강요가 너무 강했다. 다음 달 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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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