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헤어질 결심’ 박해일 “내 역할 박찬욱 감독 보며 연구”
양복 입는 형사 ‘해준’ 특이한 기질…“주변 닮은 사람 박찬욱 감독 뿐”
문어체 이질적 대사 한국 남자-중국 여자 동질감 넘어가는 과정 담아
입력 : 2022-06-29 01:30:01 수정 : 2022-06-29 01:3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박찬욱 감독은 박해일의 어떤 얼굴을 원했던 걸까. 박해일을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이다. 그의 출세작이나 다름 없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속 용의자 역할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다. 쌍꺼풀이 없는 눈과 매끄럽고 곱상한 그의 얼굴, 여기에 반듯하단 인상이 강한 그의 또렷한 딕션까지 더해지면 속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인물함정에 빠져 버리게 된다. 한국 영화계 거장 감독들이 모두가 이런 이미지에 박해일을 첫 손가락에 꼽는 것도 비슷하다. 그가 출연해 온 작품 속 배역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박찬욱 감독은 박해일을 이번 작품에 원했다. 박찬욱 감독이 원한 이번 작품의 색깔을 멜로. 그리고 그 멜로의 구체적 결 그리고 색채는 클래식’. 좀 더 고전적 의미가 뿜어내는 모습의 멜로를 담아내고 싶었단다. 그걸 위해 결 자체의 세밀함을 드러내야 하는 감정적 스토리인 멜로를 그리는데 박해일이란 배우를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 감독으로선 두 번째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헤어질 결심의 박해일이 큰 몫을 했음을 누구도 부인하긴 힘들 것이다.
 
배우 박해일. 사진=CJ ENM
 
인터뷰 만남에서 첫 번째는 지난 5월 수상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이었다. 배우상 수상을 했으면 더 없이 즐겁고 좋았을 당사자였지만 그는 자신보다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것에 더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조금의 가식이나 꾸밈이 없이 그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얻은 것은 너무 많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감독님이나 작품이 뭐라도 꼭 받았으면 했었다고 웃었다.
 
제가 이 작품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민폐는 끼치지 말자였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칸 영화제 초초청 받았을 때 전작 대부분이 수상을 하셨었거든요. 이번에도 가는 데 만약에 못 가면 제가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거고. 이거 진짜 뭐라도 받았으면 했죠. 전 사실 안중에 없었어요. 현지에서 진짜 감독님 명성에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단 생각뿐이었는데 수상 당시 기뻐하던 모습이 그런 부담을 덜어내는 순간이라 진짜 기뻐서 그랬던 것도 있어요. 그런데 바로 옆에 강호 선배까지 수상을 하셔서 더 기쁨이 컸죠. 하하하.”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은 형사를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해준은 기존 상업 영화에서 등장해 온 강력계 형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반듯하고 깔끔하고 빈틈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박해일은 해준이란 인물 자체를 의외의 지점에서 풀어냈단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자신의 눈에 비친 해준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던 인물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고.
 
배우 박해일. 사진=CJ ENM
 
전 해준의 기질 대부분이 감독님 기질이 반영된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해준을 준비하면서 형사 분들보다 감독님을 더 많이 관찰했어요. 한국의 영화 감독님들 가운데 아마 현장에 양복 입고 나오시는 분은 제가 알기론 박찬욱 감독님이 거의 유일할 거에요. 또한 매너도 있고 유머스럽기도 하고. 이런 사람 누가 있지 싶었죠. 바로 옆에 박찬욱 감독님이 있는 거에요(웃음)”
 
이런 이미지를 위해 극중 박해일이 입고 등장하는 양복에는 치밀한 디테일까지 담겨 있었다. 상의에 주머니가 12, 바지에 주머니가 무려 6개가 달려 있었다. 극중 해준은 인공 안약을 상비하고 다닌다. 이 안약은 필요할 때 상의와 바지 주머니에서 적절한 지점에서 그의 손에 나오게 된다. 이런 점이 캐릭터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다가왔단다. 가볍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지점에서 적절한 물건이 그때그때 나오는 것 같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성격을 반영한 듯한.
 
외형적인 구축에서부터 극적인 장치를 다 녹여내신 듯해서 놀랐죠. 정말 수많은 양복을 입으면서 해준의 이미지를 찾으려 노력하셨어요.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을 찾으려 했죠. 반면 스마트 워치 같은 디지털 기기로 녹음을 하거나 증거 자료를 메모하는 등의 기술적인 면도 부각시키면서 대비를 주셨어요. 뭔가 치밀하면서 준비된 남자 같은 느낌을 원하셨던 게 아닐까 싶죠.”
 
배우 박해일. 사진=CJ ENM
 
헤어질 결심을 보면 가장 주목되는 점이 바로 대사다. 해준과 그의 상대역 서래가 나누는 대화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가 상당히 많다. 형사란 직업으로서 쓰는 단어를 넘어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 아닌 단어와 문장들이 인물간 대화에서 스스럼 없이 나온다. 대표적인 단어가 인물간 관계에서 붕괴란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외에 시적인 대사들이 상당히 많다.
 
우선 굉장히 문학적이고 시적이잖아요. 그리고 형사들이 쓰는 말투가 해준의 말투는 결코 아닐거에요(웃음). 사실 저도 형사 역할이 처음인데 이런 말투를 쓰는 배역도 또 처음이에요. 근데 낯설거나 불편한 게 아니라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상대역인 탕웨이가 한국어가 부족한데 극중 그가 연기한 서래도 한국어가 부족해요. 결과적으로 제가 연기를 하면서 어색한 한국어인 문어체 단어를 따라하는 것들이 이질적인 두 사람의 동질감을 나타내는 관계 형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죠.”
 
박해일은 이번 헤어질 결심을 통해 박찬욱 감독과 첫 번째 작업을 했다. 그리고 외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여배우와 함께 한 작품을 오롯이 소화했다. 바로 탕웨이다.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 결혼해 국내에서 거주 중이다.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 낯익은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에겐 분명 낯선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고.
 
배우 박해일. 사진=CJ ENM
 
우선 감독님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봉준호 감독님과 비교해서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제 답변은 굉장히 다르면서 궁극적으로 너무 비슷한 두 분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 이상의 설명은 없는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탕웨이씨는 이번에 작업하는 데 굉장히 신기한 걸 봤어요. 리딩때 대본을 가져오시는 데 한국어, 중국어 그리고 영어 버전 세 가지를 꺼내 놓으시더라고요. 여쭤보니 머리에서 입으로 나오는 과정이 영어에서 중국어 그리고 마지막에 한국어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하지싶었죠(웃음) 진짜 대단하구나 싶기도 하고.”
 
박해일에게 멜로는 이번이 첫 번째는 아니다. 이미 국화꽃 향기’(2003)에 이어 연애의 목적’(2005) 그리고 은교’(2012)경주’(2014) 등이 있었다. 이 작품들을 소화해 오면서 그는 20대에서 40대 중반으로까지 나이를 먹어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배우로서의 멜로 감성은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궁금했다.
 
많이 다르죠. 20대의 연애 감정과 지금 결혼해서 배우로서 대하게 되는 연애 즉 멜로의 감정은 너무 달라요. 상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라고 할까요. 그게 너무 달라요. 넓이가 될 수도 있고 깊이가 될 수도 있고. 결이나 색깔이 달라질 수도 있고. 확실한 건 전 지금도 멜로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내 나이 대에 해날 수 있는 멜로는 어떤 색깔이 있고 또 어떤 작품이 어떤 얘기를 할까 진짜 궁금하고 기대가 많이 되요.”
 
배우 박해일. 사진=CJ ENM
 
박해일 본인에 대한 얘기보단 아마도 헤어질 결심의 연출자 박찬욱 감독에 대답해 줘야 할 부분일 듯싶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와 가장 많이 대면한 배우가 있었다. 바로 개그우먼 김신영이다. 김신영은 이번 헤어질 결심에서 특별출연이나 카메오가 아닌 당당히 주조연급 캐릭터로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의 역할에 거부감을 느낄 영화 마니아들도 충분히 많을 듯했다.
 
우선 순전히 제 생각을 말씀 드리면 그 배역에 누가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감독님이 김신영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솔직하게 그 당시 제 속내를 가감 없이 말씀 드리면 기가 막힌 캐스팅이다 싶었어요. 김신영이 등장함으로서 극 중반 이후가 뭐랄까 땅에 발을 딛고 선 느낌이 강해졌다고 할까. 전 그렇게 생각이 들고 또 그렇게 잘 해줬어요. 참고로 김신영씨가 그렇게 내성적인 성격인지 이번에 작업하면서 알게 됐어요. 근데 그런 사람이 영화 10편 한 배우처럼 인물을 소화해주셨어요. 진짜 대단한 배우에요. 전 인정!”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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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