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회전길 없는 'U턴 표지판'…대법 "지자체 사고 책임 없어"
"평균적 운전자라면 '오류 식별' 충분히 가능"
입력 : 2022-08-14 09:00:00 수정 : 2022-08-14 09: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교통사고가 난 지자체 관리 도로의 표지판이 잘못됐더라도, 평균적 시각에서 표지판의 오류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정도여서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지자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A씨와 A씨 부모가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되돌려 보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7년 3월경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대여해 서귀포시 일대를 주행하던 중 ‘ㅏ’자 형태의 삼거리에서 유턴을 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A씨가 유턴하려던 곳에는 신호등과 함께 유턴지시표지가 설치돼 있었다. 이 표지에는 ‘좌회전시, 보행신호시 유턴/소형 승용, 이륜에 한함’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삼거리에 좌회전을 할 도로가 없었고, 신호등 역시 좌회전 신호가 없었다. 표지가 도로 구조, 신호체계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A씨는 신호등에 적색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불법유턴해 반대편 도로로 진입했다. 당시 맞은 편에서는 시속 약 70km로 달리던 자동차가 반대편 신호등의 직진·좌회전 신호에 따라 교차로에 진입했는데, 때마침 불법유턴한 A씨 오토바이의 뒷부분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인해 A씨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A씨 부모는 A씨가 유턴을 하기 위해 서있던 도로가 좌회전을 할 수 없는데도 잘못된 신호표지판이 설치돼 있어 반대편 차로에서 좌회전시에 유턴이 가능하다고 착오를 일으킨 것이라며, 지자체가 관리해야 하는 유턴표지판 하자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자체는 보행자 신호등이 켜지지 않았는데도 A씨가 적색불에서 신호를 위반해 유턴을 해 사고가 난 것이라며 표지판과 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1심은 A씨 부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표지판 내용이 도로, 신호등 현황과 맞지 않더라도 A씨는 표지판 안내대로 보행신호시에 유턴을 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적색불에 유턴해 사고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은 이와 달리 판단해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문제가 된 표지판은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설치된 교통안전시설이므로 교차로 구조와 신호체계에 어긋나지 않게 설치돼야 하고 도로이용자에게 착오나 혼동을 일으켜선 안 된다”며 “사고가 발생한 교차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70km인 점 등 표지판의 기능상 결함으로 인한 위험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표지판에 ‘좌회전시, 보행신호시’라고 적시돼 있으므로 신호등이 좌회전 또는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일 때 유턴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며 “당시 교차로는 좌회전할 도로가 없었고 신호등에 좌회전 신호도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운전자라면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일 때 유턴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전에 표지판이 잘못 설치됐다는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고 표지판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적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없는 길을 있다고 잘못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표지판에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좌회전 길이 없다는 게 명백한 만큼 혼동의 우려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취지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사진=대법원)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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