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데프헤븐 "록은 죽지 않을 것"
펜타포트 '광란의 장' 만든 미국 밴드 데프헤븐 한국 단독 인터뷰
"문화 차이는 서서히 좁혀지기 마련…폭염 한국서 아이슬란드 시원함 느끼길"
'지진 같은 라이브 사운드' 서태지·잠비나이·넬·혁오의 음향 감독 참여
입력 : 2022-08-17 00:00:00 수정 : 2022-08-17 00:37:5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검은 사운드의 샤워'가 쏟아붓는 빗줄기와 맞물리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블랙게이즈'(블랙 메탈과 슈게이징이 섞인 장르)의 우주, 블랙홀의 대장관이 거기 있었다.
 
지난 6일 저녁,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둘째 날, 서브 무대 마지막으로 오른 미국 밴드 '데프헤븐(Deafheaven)'의 음악 말이다. 좌우 스피커를 타고 으르렁대는 금속성 사운드, 거칠게 포효하는 스크리밍과 물방울처럼 튀어대는 드럼의 블래스트비트, 그러나 반대로 처연하고 서정적인 멜로디…. 이들이 이날 보여준 시원하고도 음울한 '사운드 샤워'가 스피커를 타고 빗줄기와 뒤섞일 때, 펜타포트 현장은 음악 팬들을 위한 광란의 장이 됐다. 국내 음악업계 관계자들 역시 "3일 통틀어 데프헤븐이 올해 펜타의 주인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LA 출신 '블랙게이즈'(블랙 메탈과 슈게이징이 섞인 장르) 밴드 데프헤븐이 지난 6일 인천 송도 '펜타포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펜타포트 주최 측
 
이들이 무대에 오르기 2시간 전, 한국 매체 중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대기실에서 만난 멤버들 조지 클라크(보컬), 케리 매코이(기타), 대니얼 트레이시(드럼), 시브 메라(기타), 크리스 존슨(베이스)의 말투는 음악 만큼이나 투박하고 터프한 바위 같았다. 다소 경직된 표정들이었지만, 질문을 할 때마다 몸을 기자 쪽으로 45도 가까이 기울이며 진지하게 듣고 답할 언어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역시 최근 무대를 재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대에서 환호가 들려오자) 사람들도 저렇게 '원래의 삶'을 즐기기 위한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2019년 이후 한국은 두 번째인데, 새로운 앨범을 한국 팬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돼 무척이나 설렌다. 재미있을 것 같다."
 
2010년 결성, 2011년 첫번째 정규 음반 'Roads to Judah'로 이들은 세계 블랙메탈 계의 신흥 강자로 급부상했다. 2013년 발매한 두번째 음반 'Sunbather'는 2010년대 세계 메탈 '명예의 전당'에 올려놔도 손색없을 음반이다. 세계적인 음악 평론지 '메타크리틱'에서 92점(100점 만점)을 받았다. 
 
2015년 3집 'New Bermuda', 2018년 4집 'Ordinary Corrupt Human Love' 역시 메타크리틱 등 주요 음악 매체들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팬데믹 기간인 2021년 5집 'Infinite Granite'부터는 슈게이징을 블랙메탈에 뒤섞으며 새로운 사운드 실험 항해의 돛을 올렸다. 
 
미국 LA 출신 '블랙게이즈'(블랙 메탈과 슈게이징이 섞인 장르) 밴드 데프헤븐이 지난 6일 인천 송도 '펜타포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펜타포트 주최 측
 
이들 모두 청명한 햇빛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LA 출신인데, 그와 정반대인 색깔, 블랙에 집착하는 아이러니가 꽤나 재밌다.
 
"우리 음악은 LA 특유의 날씨 바이브와는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 다만, LA, 샌프란시스코, 우리가 머물렀던 미국의 곳곳은 언더그라운드 메탈신이 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도시 자체가 우리의 음악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볼 수도 있겠다. 도시의 날씨나 바이브보다, 그 곳의 음악신과 사람들이 우리와 우리 음악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운명과 사랑에 버림 받고,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할 때 '하늘(신)이 귀를 닫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데프헤븐(Deafheaven)이라는 팀명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9절에서 따온 단어. 보컬 조지가 셰익스피어처럼 입을 열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음악은 사람들의 육체를 떠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디 있든 관계 없이, 음악은 사람들을 어떤 공간으로 이동시켜줄 수 있다. 팬데믹으로 세계가 고립돼 있는 시기에, 음악은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왜 블랙메탈에 슈게이징을 섞게 된 것 같냐'고 물은 기자의 질문에 조지는 "인상 깊은 질문"이라며 "그러나 음악은 머릿 속의 계산으로 나오는 예술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지점에서 생겨난 일련의 결과물들"이라고 했다.
 
미국 LA 출신 '블랙게이즈'(블랙 메탈과 슈게이징이 섞인 장르) 밴드 데프헤븐이 지난 6일 인천 송도 '펜타포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펜타포트 주최 측
 
하이햇과 심벌 난타, 그리고 여기에 퍼즈와 오버드라이브를 건 전자기타의 공간계 잔향, 스크리밍이 뒤섞이는 이들의 음악은 검은 안개가 드리워진 사운드 샤워다. 이날 보컬 조지가 무표정으로 무대 위를 골룸처럼 기어다닐 땐, 소네트 29절, 죄 지은 영혼의 '부질없는 아우성'이 환청처럼 들렸다. 이들은 "'Dream house'와 'Sunbather'가 과거 밴드 사운드를 대표한다면, 'Great mask color'와 'Infinite Granite'는 새로운 밴드의 사운드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뒤의 두 곡은 지금의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해줬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록 음악이 약세라는 말도 있지만, 펜타포트 같은 무대들이 존재하는 한, 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차이는 설령 있을지라도 알아서 서서히 간격을 좁히기 마련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처럼 오래 활동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굳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서는 것이 곧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들은 "짧고 굵게 활동하는 것보다는, 가늘더라도 오래 좋은 음악 기록들을 남기고 싶다"며 "곡에 특정한 메시지를 담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사운드'의 퀄리티가 나올까에 집중해 음악을 만드는 편이다. 장르적으로 우리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메탈리카가 내는 사운드의 퀄리티를 좋아하고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도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 후, 직접 본 이들의 펜타포트 무대는 가히 '지진 같은 라이브 사운드'였다. 2014년부터 서태지의 음향 감독이자, 넬과 혁오, 잠비나이 등의 조상현 몰스튜디오 감독이 기술팀 하우스 믹싱 콘솔에서 사운드를 매만진 결과다.
 
미국 LA 출신 '블랙게이즈'(블랙 메탈과 슈게이징이 섞인 장르) 밴드 데프헤븐이 지난 6일 인천 송도 '펜타포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펜타포트 주최 측
 
조상현 감독은 본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데프헤븐 측과 매개하는 프로덕션 쪽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데프헤븐의 광팬임을 자처하고 있던 터라 맡게 됐다"며 "슈게이징 비중이 높은 신보와 과거 블랙메탈 비중이 높은 음반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어떻게 하면 이질감 없이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음반 사운드와 유사하게 낼 수 있을지 등을 고민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음반을 들어보면 아실겁니다. 보컬이 뿌연 안개처럼 뒤에 배치돼 처절한 감성을 내거든요. 라이브에서도 음반처럼 보컬이 악기와 어우러지는 처절한 감성을 존중해주고 싶었어요. 드럼 사운드에선 두 가지를 신경 썼는데, 블라스트 비트 때 상대적으로 약한 어택음들의 톤·볼륨 보정에 집중하다가, 강한 드럼으로 전환할 땐,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타의 경우는 이미 멜로디들을 다 꿰고 있어 자신이 있었으나, 어떤 기타리스트가 어떤 멜로디를 치는지 몰라 현장 중계 카메라를 참고했던 기억이 있네요. 무대 위 연주자의 손가락 움직임을 집중 관찰하며 드라마가 흐를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보컬은 리버브와 딜레이(소리가 울리고 반복되는 효과를 주는 이펙터의 일종)를 많이 넣어달라고 주문했습니다."(조상현 감독)
 
이어 조상현 감독은 "악기별 사운드에 맞을 마이크를 일일이 고르고 아웃보드(콘솔 바깥쪽의 외장 이펙터류들)를 챙겨간 것이 이번 라이브 사운드에 도움이 된 것 같다"며 "공연 끝난 후 정리하면서 멤버 중 크리스(베이스·미국 현지에서 스튜디오 엔지니어로도 활동)는 제가 기타마이킹을 위해 챙겨갔던 리본마이크들을 보며 '이거 미국 내쉬빌 그 회사꺼 아니냐'며 '스테이거(Stager)' 마이크를 언급했다. 이후 서로 음향 장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지금도 '사운드'에 관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향후 잠비나이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계획"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르기 직전, 멤버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공간이나 여행지'에 빗대면 어딜지 물었다.
 
"새로운 앨범은 아이슬란드로의 여행 같은 음악일 것이다. 폭염으로 들끓는 한국에서, 시원한 아이슬란드를 느껴달라."(조지)
"아이슬란드는 블랙메탈의 성지기도 하다. 나는 아이슬란드 '빠'다."(크리스)
"새 앨범을 포함한 그냥 우리의 음악 전체라 하면, 나는 우주선 같은 곳이라 하고 싶다. 이 곳 저 곳 새로운 미지를 탐험하는."(시브)
 
미국 LA 출신 '블랙게이즈'(블랙 메탈과 슈게이징이 섞인 장르) 밴드 데프헤븐이 지난 6일 인천 송도 '펜타포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펜타포트 주최 측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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