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종이신문의 혁신, 맥락과 통찰을 담아야 산다
입력 : 2023-02-06 05:00:00 수정 : 2023-02-06 05:00:00
“마이크 필드(43·뉴욕), 9·11 테러 당시 응급의료요원.”
“알란 룬드(81·워싱턴), 놀라운 귀를 가진 지휘자”.
“테레사 엘로이(63·뉴올리언스), 디테일한 꽃 장식으로 유명한 사업가.”
 
2020 627, 뉴욕타임스는 1면 한 면을 통 털어 코로나 바이러스로 숨진 시민들 이름을 빼곡하게 채웠다. 마침 이날은 사망자가 10만 명을 돌파한 날이었다. 기자들이 미국 전역에 걸쳐 수백 개의 지역 신문을 뒤져서 1000명을 선정했고 이들의 삶을 각각 한 줄로 요약했다. 이들 모두가 각각 하나의 우주고 이들이 곧 우리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강력한 편집이었다.
 
이에 앞서 2019 1121 <경향신문> 1면도 비슷한 편집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 있다.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경향신문>은 산업재해로 숨진 희생자들 1200명의 이름과 사망 원인을 빼곡하게 채웠다. 온라인에는날마다 김용균이 있었다는 인터랙티브 기사도 별도로 내보냈다. 강력한 시각적 충격과 함께 수많은 죽음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기사였다.
 
종이신문에는 온라인 기사로 담지 못하는 물리적 특성이 있다. 신문을 펼쳐 들었을 때 튀어오르는 제목과 사진, 편집의 중량감은 마우스 스크롤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기사 제목과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신문을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이슈의 흐름이 살아나고 뉴스와 뉴스가 연결되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신문은 단순히 현재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시선으로 통시적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오늘 발생한 사건은 지난주 발생한 사건의 연장선이고 지난달이나 길게는 몇 년 전 벌어진 사건의 연장선 위에 있다. 종이신문이 여전히 존재감을 갖는 것은 온라인에 담을 수 없는 통찰과 맥락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로스 다우손(Ross Dawson)이라는 미래학자가 미국에서 2017년이면 종이신문이 사라질 거라는 분석을 내놓은 적 있다. 영국은 2019, 캐나다는 2020, 덴마크는 2023년이고 한국에서는 2027년이면 종이신문이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었는데, 지금까지 추이를 보면 완전히 빗나갔다.
 
뉴스 유료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욕타임스>는 처음 가입할 때 구독료가 주 0.5달러부터 시작한다. 종이신문 구독은 배달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주 10달러부터 시작한다. 종이신문이 20배나 더 비싸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디지털 구독자가 800만 명으로 종이신문 구독자 78만 명의 10배가 넘는다.
 
디지털 구독이 등장하기 전인 2004년에 종이신문 주중판이 112만 부, 주말판이 167만 부 나갔으니 대략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지만 매출 기준으로는 여전히 종이신문을 무시하기 어렵다. 구독자 수는 디지털과 프린트가 91% 9%로 차이가 크지만 구독 매출은 디지털이 57%, 프린트가 43%를 차지하고 광고 매출은 디지털이 62%, 프린트가 38%를 차지한다. 여전히 종이신문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구독자 대비 매출(구독+광고)은 디지털이 구독자 1명당 연간 135달러인데 프린트는 1명당 991달러에 이른다. 종이신문 구독자 1명이 만드는 매출이 디지털 구독자 1명의 7배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광고 단가도 아직까지는 종이신문이 훨씬 더 높다.
 
물론 종이신문 시장이 크게 위축된 건 사실이다. 지난해 5월 말 기준으로 미국에는 6377개의 신문이 남아있는데 1주일에 2개 꼴로 문을 닫고 있다. 2006년에는 신문 산업 종사자가 75000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31000명으로 줄었고 시장 규모도 500억 달러에서 210억 달러로 쪼그라 들었다. ‘뉴스의 사막이 확산되면서 미국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7000만 명이 뉴스 조직이 없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지역 신문에서 전국 신문으로 거듭난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의 경우가 오히려 아웃라이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2020년 기준으로 종이신문 구독률이 6.3%까지 떨어졌고 열독률은 2021년 기준으로 8.9%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발행부수가 2019년 기준으로 886만 부에 이른다. 거품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종이신문의 몰락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2004년부터 미국에서는 신문 광고 시장이 80.6%가 줄었는데 같은 기간 한국은 21.9% 줄어드는 데 그쳤다. 아직 광고 시장이 살아 있고 주요 신문사 매출도 여전히 굳건하다.
 
종이신문 독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종이신문은 뉴스 고관여자들을 중심으로 한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뉴스의 사막이 확산되고 있지만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이 꾸준히 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디지털이 성장의 축이라면 프린트는 탄탄한 기반이다. 한동안 디지털 퍼스트가 화두였지만 이제는 프린트의 문법을 오프라인에 옮겨담으면서 소통을 확장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다. 동시에 온라인에서 사라진 맥락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한 도전 과제가 됐다. 종이신문의 편집자들이 뉴스 가치를 판단하고 제목을 뽑고 지면에 배치하는 역할을 했다면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뉴스 링크에 의미를 부여하고 유기적으로 엮고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하루 쏟아져 나오는 기사가 하루 6만 건에 이른다. 이 기사들 가운데 어느 정도 사회적 의제 설정에 기여하는 기사는 300건도 채 되지 않는다. 뉴스가 넘쳐날수록 뉴스의 효용이 줄어들지만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은 커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기사 하나를 100만 명 정도 읽으면 세상이 바뀐다. 하지만 어떤 기사는 힘 있는 사람 1000명만 읽어도 변화를 만든다. 신문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다. 맥락과 통찰을 담은 종이신문은 살아남을 것이다. 종이신문과 온라인의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하다. <뉴스토마토>의 지면 개편과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권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