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격 은폐' 서훈·서욱·박지원 등, 재판서 '혐의 부인'
검찰 "남북 관계나 피해자 방치에 대한 비판 의식해 범행"
서훈 변호인 측 "은폐 의도 없어…첩보 삭제 지시 사실도 없어"
입력 : 2023-03-24 17:04:44 수정 : 2023-03-24 17:04:44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인사들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혐의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서해 첫 공판에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도 피의자로 출석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남북 관계 경색과 피해자인 이대준 씨에 대한 무대응 비판을 우려한 정부가 사건을 은폐할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피의자 측은 모두 은폐 의도가 없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며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 이래진 씨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사진)
 
검찰 "사람이 먼저라더니…남북경색·비판 우려해 은폐"
 
검찰은 공소사실 요지를 설명하며 당시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한 정부의 태도가 사건 은폐의 이유로 이어졌다고 봤습니다.
 
검찰은 "당시 북한에서는 통신선을 차단하고 남북 연락 사무소를 파괴하는 등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다"며 "남북 경색 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UN 화상연설을 하기로 했는데, 실제 이대준 씨 사망 4시간 후에 종전 선언을 포함한 대통령의 화상 연설이 국내외에서 중계됐다"고 사건 당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런데 군 첩보부대는 북한에서 이 씨가 발견됐다고 보고했으나 정부는 이 씨를 구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국민을 방임한 결과 이 씨는 결국 북한군에 피격 사망했고 이는 (문 전 대통령의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장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검찰은 정부가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무대응으로 조치한 것에 대한 강한 비판을 우려한 점도 사건 은폐의 원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검찰 측은 "당시 북한은 코로나에 엄정 대응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 씨는 장시간 표류해 탈진으로 구조가 시급했지만 북한이 사살 후 시신을 소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런데도 대통령은 UN 화상연설로 종전선언을 했다"며 "이러한 정부의 무대응, 미조치에 대한 강한 비판이 예상되는 상황으로, 사건을 은폐할 이유가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공동취재사진)
 
서훈 변호인 "SI 첩보 삭제 지시로 은폐? 원본 있다"
 
이날 피의자 변호인 측과 검찰은 공소장에 적시된 '은폐'라는 단어의 뜻을 놓고 설전을 벌였습니다.
 
서 전 실장의 변호인으로 나선 이석수 변호사는 "공소장에 나온 '은폐'라는 단어는 2020년 9월23일 연합뉴스의 보도가 없었다면 피고인들의 사건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는 뜻이냐, 언론 보도가 안되면 영원히 국민들에게 숨길 수 있다고 보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뜻이냐"며 "어느 시기가 돼 사건 발표를 전제했다면 은폐는 적절하지 않다"며 검찰에게 공소장 속 은폐의 정의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사건을 알리는 것을) 영원히 은폐한다는 게 아니라 월북이 아닌데 월북으로 실체를 은폐한다는 뜻"이라며 "공소 사실에도 썼지만 월북을 조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하루 만에 자진 월북으로 졸속 발표하며) 관련 내용을 감췄다는 취지의 은폐"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서 전 실장이 2020년 9월 이씨가 북한군에 살해되자 사실을 은폐하고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허위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판단해 지난해 12월 9일 그를 구속 기소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SI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고 하지만 원본은 현재도 존재하고 증거로도 제출될 것"이라며 "복사본을 100부 만들었다가 70부 지운 정도의 상황인데, 은폐하려고 했단 건 납득이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서 전 실장과 공모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서 전 장관, 박 전 원장, 김 전 해경청장, 노 전 비서실장 이날 재판에서 모두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피해자 이 씨의 형인 이래진 씨는 재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피의자 측이) 어떻게 첫 재판에서 자기 변명만 하고 안 했다고 하냐"며 "문 전 대통령이 출석하도록 하거나 고발을 통해 (피의자들에 대한) 단죄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1차 공판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공동취재사진)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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