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사건' 재수사, 5년 전 '윗선' 드러날까
민정실 '윗선' 규명·검찰 공정수사 등 쟁점…특수강간 의혹은 진상조사단서 조사
입력 : 2019-03-25 18:31:08 수정 : 2019-03-25 18:31:08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5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5년만에 검찰이 다시 수사에 나서게 됐다. 과거사위가 곽상도 전 민정수석비서관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을 직접 수사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당시 수사에 비해 진일보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검찰의 칼날이 진실의 어느 부분까지 파고 들지는 미지수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별장 성접대 의혹'이다. 이 사건은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김 전 차관을 비롯한 고위 정관계 관계자들을 자신의 별장으로 불러 성접대를 시켰다는 게 얼개다. 그러나 당시 수사상황과 피해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성접대' 사건이 아닌 '특수강간'이 사건 본질에 더 가깝다는 분석이다. 
 
정한중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장 대행이 2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과거사위원회 회의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 문제 등에 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해 여성들의 주장에 따르면, 윤씨는 비교적 엘리트급에 속하는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해 환심을 산 다음, 자신의 별장으로 유인해 성폭력하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동영상을 남긴 이유는 피해여성들을 자기 마음대로 불러 내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피해 여성 중 A씨는 자신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윤씨가 보여주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동영상을 보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A씨를 비롯한 피해여성들이 장기간에 걸쳐 윤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한 검찰 고위간부는 '김 전 차관의 동영상'과 관련해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어 강간죄는 성립하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피해 여성의 주장과 같은 협박이 지속됐다면 강간죄 성립이 안 된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과거사위가 검찰의 재수사를 권고하는 혐의 중, 이 부분은 빠졌다. 김 전 차관과 함께 윤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고위 경찰이나 군 장성 출신에 대한 수사도 포함되지 않았다. 진상 조사단 조사 단계에서 '강간죄'가 성립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법리적으로 볼 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약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의혹이 남겨져 있는 한 이번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법조계 평가다. 김 전 차관에 대한 특가법상 뇌물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일각에서는 특수강간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다른 혐의에 더 치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사건의 특수강간에 대한 진상은 조사단이 계속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이 검찰총장 후보군에서 밀려났다가 차관으로 거론됐을 때, 검찰 안팎에서는 "윗선에서 이상할 정도로 푸시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최근 박관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이미 민정라인에서도 김 전 차관의 행실이 구설에 올라 있다는 정보는 취득하고 있었다. 박 전 행정관은 이런 정보가 청와대로 보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김 전 차관은 당시 대전고검장에서 차관으로 영전했다.  
 
이 과정에 곽 전 수석과 이 전 비서관이 있었다. 진상조사단과 검찰 과거사위 발표를 보면, 당시 청와대는 김 전 차관을 임명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이었다. 곽 전 수석 등은 김 전 차관의 범죄혐의를 내사 중이던 경찰을 질책하거나 수사지휘라인을 부당하게 인사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심지어  ‘김학의 동영상’에 대한 감정을 진행하던 국과수에 행정관을 보내 위 동영상을 보여달라거나 감정결과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 민정실은 고위관료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는 것이 본래 임무이다. 특정 인물을 임명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본래 임무에 반하는 것이다.
 
문제는 곽 전 수석과 이 전 비서관이 본래 임무에 반하도록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이 부분이 김 전 차관 사건 수사의 목표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시 검·경 수사지휘라인이 나서 김 전 차관을 보호했고 6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검찰이 과연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과거사위의 권고를 받은 법무부는 이날 "위원회의 권고내용을 대검에 송부해 신속하게 적절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건 진행을 지켜봐 온 검찰은 이미 수사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그림을 그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특별검사 보다는 특임검사나 특별수사팀이 수사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수사지휘라인 중 수뇌부만 퇴직하고 상당수의 검사가 고위직으로 남아 있는 점, '윗선' 하명을 받고 특정 인물이 출세 할 수 있도록 검찰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그 때 당시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현직에 있던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전 차관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는 것과 버닝썬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면서 "검찰 수사에 의한 진상 규명 전망은 밝다고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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