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구본무 회장과 소탈함의 의미
입력 : 2019-05-21 06:00:00 수정 : 2019-05-21 06:00:00
왕해나 산업1부 기자
기자들이 다가가서 질문하면 껄껄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업 현장에서는 진지하고 열정이 넘쳤다. 5년 전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첫 인상이었다. 인연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없었다. 공식행사에서 두어 번 질문한 게 전부다. 당시 기자 초년생에게는 대기업 회장에 인사를 하는 것조차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늘 웃는 낯과 어딘가 모를 친근함이 한 구석에 남았더랬다. 
 
구 전 회장을 다시 마주한 것은 지난해 5월 장례식장이었다. 구 전 회장은 1년 전 이날 일흔셋의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다. 3일 내내 지킨 빈소에서 가장 많이 본 문구는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사양합니다’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화 행렬, 대규모 외부인 조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 전 회장은 즐겨 찾던 화담숲 인근에 수목장으로 잠들었다. ‘소탈’이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조차 구 전 회장의 별세를 안타까워 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생전의 삶과 올곧은 경영철학이 회자되면서 ‘신드롬’까지 생겼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왔던 것이 전통이었고 저력이었다”. 직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회자했다.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그리고 100명 이상의 의인을 배출한 ‘의인상’까지. 말뿐만 아니라 몸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에 그의 말들은 더욱 힘을 얻었다.
 
구 전 회장을 추억하는 일은 갑질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벼락 갑질부터 입주민의 경비원 갑질, 맥도날드 갑질까지. 사회·경제적 지위를 무기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례에 그는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구 전 회장 뒤를 이어 총수에 오른 구광모 회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외부 인재 수혈, 부진한 사업 재편, 대규모 인수합병 등이다. 앞으로도 구광모호는 미래 먹거리 발굴, 과감한 투자를 통해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은 구 전 회장의 소탈함과 인간적인 면모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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