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의식주' 중의 제일은?
입력 : 2019-05-22 06:00:00 수정 : 2019-05-22 06:00:00
옷, 음식, 집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우는 인간생활의 3요소라는 의식주다. 어렸을 땐 당연히 중요한 순서대로 의식주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생각했다. 그 후 과잉소비의 시대에 적응하면서 기본적인 의식주보다는 TPO에 맞게 얼마나 잘 입고, 영양과 칼로리를 생각하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고, 직주근접까진 못해도 화장실 2개 이상 있는 집에 살고 싶어하는 그런 삶에 익숙해졌다.
 
얼마 전 마포구 성산동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가장인 A씨도 몇 년 전까지 그런 삶을 살았다. 번듯한 학원을 운영하고 두 살 연하의 아내와 연년생의 두 딸을 키우며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살 때까지 그 역시 기본적인 의식주는 신경쓰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멀쩡하던 학원은 갑작스런 경영난으로 큰 빚을 지게 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주신 빚까지 떠안게 되자 그의 삶은 갑자기 흔들리게 됐다. 결국 학원은 물론 아파트에 세간살이까지 모두 처분해야 했던 그는 가족과 함께 찜질방과 여관, 모텔, 게스트하우스를 떠돌며 일용직노동자가 됐다. 
 
당장 내일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얘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지만 그는 ‘고생 조금만 더 하자’, ‘오늘만 버티자’란 심정으로 하루를 견뎌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화목한 가정 사이도 급속히 나빠져 아이들은 투정 부리는 횟수가 늘고 아내도 예전같지 않았다. 그의 몸도 익숙치 않은 물류센터 일을 버티지 못해 왼쪽 어깨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네 가족이 떠돌이 생활로 한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지난 봄, 그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구걸이라도 할 심정으로 찾아간 주민센터에선 그를 긴급복지 대상으로 선정했고, 그는 마포구에서 임시주거주택을 지원받아 지난달부터 지내고 있다. 6월까진 무상으로 지낼 수 있다니 당장 금융문제에 직면한 그에게 이보다 큰 선물은 없었다.
 
다행히 임대주택으로 가기 전까지 머물 집은 해결됐지만, 말 그대로 텅 빈 집일 뿐이다. 빌라 반지하에 방 3개라지만 구청과 민간단체, 주민들이 지원해준 기본 세간살이 외엔 침대도, TV도, 컴퓨터도 아무 것도 없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탓에 애들이 입을 넉넉한 옷도 없고, 냉장고엔 김치 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의식주 중에 그에게 해결된 것은 단지 주 하나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떠돌이 악순환'이 해결되자 첫째 딸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둘째 딸은 유치원을 알아보고 있다. 두 딸은 요즘 처음 생긴 책상을 떠나질 않는다. 흔들리던 가족관계가 집 하나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덕분에 그도 이젠 주위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그의 삶이 큰 진폭을 보였던 것과 달리 지금은 여전히 과잉소비시대다. 어쩌면 명품 옷을 입지 못하고, 최고급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어찌어찌 해결될 수 있다. 반면에 부동산에 해당하는 집은 우리가 보금자리라 부르듯이 최소한의 주거기준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경우 다른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좁은 서울 하늘 아래 내 집 하나 갖기 정말 어렵다. 주택가격은 무섭게 오르고, 임대주택은 여전히 부족하고 조건이 맞아도 6개월, 1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거약자들은 단순히 집만 없는게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도 충분히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가 주거약자에 관심가져야 하는 이유다. 
 
박용준 사회부 기자(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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