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옛 노동당사서 평화를' 군가 비튼 예술의 역설
입력 : 2019-06-10 06:00:00 수정 : 2019-06-10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굵은 빗줄기가 떨어진다던 그날의 일기 예보는 하나도 맞지가 않았다. 스산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 붓으로 흘려 놓은 듯한 구름 만이 옅게 뉘어져 있을 뿐이었다.
 
지난 7일 강원 철원군 노동당사에서 열린 '제2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피스트레인)' 개막 공연. 거짓말 같은 날씨에 어울릴 법한 말도 안 되는 무대가 준비 중이었다.
 
이날 공연 20분전 무대 뒤편에서는 백색 옷에 투명 고글을 착용한 무리들이 흐느적 거리며 춤을 맞춰보고 있었다. 묘한 의상과 동작 만으로는 이후 보게 될 충격적인 무대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7시 넘어 당사 앞 특설무대에서 포크가수 김사월이 노래했다. 총탄과 포탄, 전차 자국이 안팎으로 남겨진 이 구조물을 뒤로 하고 그는 안개 같이 자욱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김해원, 김지원, 백현진도 '압록강 행진곡', '사나이 한목숨' 등을 부르며 무대에 차례로 합류했다.
 
지금까지 알던 굳세고 호전적인 군가는 거기 없었다. 아련하고 우스꽝스럽고 때론 절규처럼 뿜어지는, 이 군가는 아예 새로운 종합 예술의 형태에 가까웠다.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등으로 구성된 빅밴드가 쉴새 없이 재지한 사운드로 곡을 새롭게 변주했다. 앞서 만난 현대무용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노동당사 앞에 일렬로 서서 넥타이를 휘날리거나 엎어지는 등 해학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보였다. 온갖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 그것이 군가를 군가로 들리지 않게 했다.
 
이 무대의 연출자 장영규 감독의 작품 의도를 접하고서야 이 이질성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장 감독은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군가의 본질을 지우는데" 이번 공연의 목적이 있다고 했다.
 
전쟁의 상흔으로 기억되는 노동당사에서, 어쩌면 가장 많이 울려 퍼졌을 군가를 그는 생각했다. 그리곤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드러내 그 폭력성을 해체하고자 했다. 평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서 택한 '예술의 역설'. 장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평화를 향한 시도는 군가에 담긴 폭력성을 해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역설은 피스트레인의 공식 취지를 떠올리게 했다.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
 
탈이념은 서막에 불과했다. 행사는 고석정 특설무대로 자리를 옮겨 이틀간 더 이어졌다. 나이지리아와 스페인, 쿠바 밴드부터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전 멤버 존 케일까지. 국가와 인종, 장르 등 세상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음을 음악과 춤, 연주로 설명했다.
 
7일 밤 ‘평화 열차(피스트레인)’가 노란 조명으로 물든 노동당사 앞에서 그렇게 출발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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