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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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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입니다
"다이어트 끊었어요"

2024-03-11 10:08

조회수 :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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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얘 너 살 빠졌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 엄마가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랍니다. 저한테까지 전화해서 자랑하시는 걸 보니 엄마가 기분이 상당히 좋은 모양입니다. 즐거움도 잠시, 엄마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너 살 빼야 해!"
 
짧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질문에 대한 제 반응이 영 마뜩잖았는지 엄마는 한숨을 내쉬다 훈계를 이어갑니다.
 
"여자는 살 찌면 안 돼, 항상 날씬하고 예쁘게 관리해야지"
 
요즘 살 찐 딸이 걱정인가봅니다. 추레하게 운동화에 티셔츠 쪼가리나 걸치고 다니는 것도 영 마음에 안 든답니다. 엄마를 만족시켜줄 대답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대충 얼버무리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요. 날씬하지 않은 딸을 걱정하는 엄마,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 아닌가요?
 
다이어트 식품은 편의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WHO(세계보건기구)가 1990년부터 2022년까지 전세계 200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다른 국가의 성인 저체중 유병률은 감소한 반면, 한국의 경우 같은 기간 저체중 여성이 2%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WHO는 논문에서 "적정한 체중은 건강의 기본적인 요건이고 심한 저체중은 성장발달에 해롭다"며 우려를 표했는데요. 한국 여성의 저체중률이 증가한 데에는 유독 여성의 외모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문화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 찐 여성은 자기관리 못 하는 게으른 사람', '아름답지 않으면 여성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가 의심의 여지 없이 당연히 각인되는 사회,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다이어트 안 할 겁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비만해지지는 않아야겠지만, 더는 미용을 목적으로 한 다이어트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물론 저도 미련하리만큼 외모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간만에 만난 지인에게 "너 살 좀 쪘다"는 소리를 들으면 열받고 우울해 하던, 조금이라도 체중이 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네요.
 
그때 저는 월급의 대부분을 꾸밈 비용으로 쓰고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선 그 옷을 소화할 수 있는 예쁜 몸매가 필수이므로, 매끼니 뭘 먹었는지 기록하고 하루 최소 3시간 고강도 운동을 했습니다. 정해진 양의 음식을 먹고 운동 할당량을 채워야만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저체중으로 수족냉증과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렇게 다이어트 강박으로 고생하다 폭식의 늪에 빠지더니 고도비만 환자가 되더군요.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으로 다행히 지금은 표준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간 수치, 콜레스테롤이 회복됐고 손발도 많이 따뜻해졌고요.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안하고 삶의 여유도 제법 생겼어요.
 
비록 전처럼 예쁜 옷을 입을 수는 없지만, 미용체중은 아니지만, 외적 매력은 떨어졌지만 저는 건강한 신체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로 꽉 채워진 지금의 제가 좋습니다. 아름답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이 전보다 제게 따듯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농담) 그래도 저는 이대로 살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좋습니다.
 
저는 다이어트를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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