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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현장에서)역관 하세국의 절망과 전직대사의 현실인식

2019-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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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치부 기자
역사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말' 전후로 "이 책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는 류의 공지를 접하게 된다. 소설에 실존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섞여있고, 작가의 등장인물 묘사가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안내도 있다. 다만 완성도 높은 역사소설 작가들은 관련 서적을 최대한 읽고 집필에 나선다. 사료 부족으로 비어있는 공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방식의 책이 주는 울림은 크다.
 
작가 박준수는 <역관 하세국>에서 16~17세기 조선의 여진어 통역이었던 하세국의 삶을 그린다. 하세국은 명청 교체기 중국 대륙과 조선을 오가며 정세파악에 전념한다. 한양의 사역원(조선시대 역관 양성기관) 출신이 아니어서 품계·녹봉 없이 '향통사'로 일했지만 특유의 어학 실력을 토대로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와도 교섭한다. 조선 왕 광해군은 하세국을 통해 나라의 살길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인조반정으로 실각한다. '한낱 통사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어찌 세치 혓바닥으로 대륙의 거대한 변화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푸념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하세국도 누르하치에 의해 처형된다. 신료들은 명에 대한 의리만을 좇으며 하세국의 죽음을 앞당긴다.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계승범 서강대 교수의 논문 '향통사 하세국과 조선의 선택'에 따르면 하세국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시기부터 1622년 2월 처형될 때까지 조선의 살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를 지원했어야 할 비변사 신료들은 친명배금 노선을 버리지 않았다. 실리외교를 추구했던 광해군에 맞서기만 했던 비변사의 강경론은 하세국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후금을 들짐승에 비유하며 힐난했을 뿐 그들을 막을 방도는 외면한채 명에만 기댔다.
 
그렇게 하세국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달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묘호란·병자호란이 터졌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신료들은 남한산성으로 급히 피신한다. 작가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왕과 신료들의 의미없는 말의 향연을 그린다. 지원병을 모으는 격서를 성 밖으로 내보낼 방도를 찾지 못하던 때 예조판서 김상헌은 대장장이 서날쇠의 도움을 얻는다. 서날쇠가 경기·충청지역 산속을 헤집고 구원병에게 임금의 격서를 전하려 고군분투할 때 성 내에서는 그의 신분에 문제제기를 했고, 왕은 명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것이 그들의 생각이고, 신념이었다.
 
지난 8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한일관계 - 어떻게 풀어야 하나' 포럼에서 이수훈 전 주일 한국대사는 최근 한일갈등을 경제전쟁으로 규정하며 아베 내각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수출허가 신청 면제대상(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보복조치이며 아베 총리가 한일관계를 지탱해주는 정경분리 원칙을 저버렸다는 주장도 했다.
 
정치인의 언어와 책임있는 정부 당국자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특히 외교관은 더욱 그렇다. 이 전 대사는 지금은 학자로 돌아갔지만 올해 5월까지 대일외교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아베 정부의 행동은 패권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해있다" "지금은 전쟁이기에 일단 싸워야 하며, 제일 중요한 것이 국민의 단합"이라는 말들은 정치인의 그것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방청석에서 조용히 듣고있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 "전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고 있다. 어떻게 경제전쟁이라고 하느냐"고 일갈했겠나.
 
불과 석달 전까지 도쿄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던 사람의 인식이 '대일강경론'에 머물러있다면,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결책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우리시대 또다른 하세국·서날쇠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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