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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공공기관과 민간위탁

2023-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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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동진 기자] 원청의 사용자성 문제는 최근 노동법 분야에서 그야말로 ‘핫 이슈’입니다. 특히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CJ대한통운 사건 판결을 비롯해 2022년 말~2023년 초에 법원 하급심과 중앙노동위원회는 단체교섭 등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해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각 사건을 판단하는 세부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2021년 4월 비준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서도 수·위탁 계약형태와 관계없이 고용에 대한 연관성이 있다면 사용자임이 인정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 후 1년간의 기탁기간이 지나 2022년 4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되자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정의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 중요한 이유는 실질적인 지배를 하는 원청업체가 하도급 등을 통해 간접고용 관계 뒤에 숨어 책임회피를 하는 등의 부작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SPL 제빵공장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한 커뮤니티에는 “나도 공장에서 기계에 팔이 낀 적이 있었는데 현장관리자가 사색이 돼서 다가오다가 내가 파견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지침 또는 본보기가 되어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수십 년간 공적 업무를 해온 노동자들을 “행정과 계약한 위탁회사의 직원”일 뿐이라며 책임 회피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 봉개동 소각장의 노동자들은 위탁 회사만 바뀌었을 뿐 20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했으나 소각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됐고, 서울혁신파크 노동자들은 해당 부지에 질병청이 있을 때부터 30년간 미화 업무 등을 해 왔으나 올해 말 사업 종료로 나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공공 부문의 민간위탁은 2009년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비용의 절감, 행정의 효율화 등을 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으나 온갖 악폐습을 양산하며 노동자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취재 당시 공공기관의 공적 책임에 대해 묻자 “모든 공공기관이 비슷한 방식으로 민간위탁을 하는데 그럼 그 기관들은 전부 다 노동자들의 고용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반문하던 공공기관 관계자의 말에 한숨이 나오는 건 저 뿐일까요.
 
제주 봉개동 소각장 노동자 농성 천막 방문한 오영훈 제주지사(사진 = 연합뉴스)
 
정동진 기자 com2d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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