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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진

누구를 위한 보수 인하일까

2024-04-26 17:28

조회수 :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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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회사를 위한 결정도 고객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최근 만난 자산운용사 임원은 삼성자산운용의 상장지수펀드(ETF) 보수 인하를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용업계에서 ETF 보수 인하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이 관계자는 왜 이렇게 까지 평가했을까요. 
 
삼성자산운용은 최근 KODEX 미국 대표지수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에 투자하는 ETF 4종에 대한 보수를 0.0099%로 인하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보수는 0.05%, 즉 5bp에서 1bp도 안되는 수준으로 낮춘 것입니다. 운용사는 ETF 상품을 만들고 이를 운용하는 대가로 투자자에게 보수를 받는데(상품가격에 포함해서), 보수를 낮추면 투자자에게 좋은게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보수 인하는 투자자에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회이고, 그래서 다수의 운용사들이 보수 인하 전략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좀 다른 평가가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ETF 시장 점유율 1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의 보수 인하 마케팅에 "선을 넘었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ETF 시장이 커지면서 운용사들의 점유율 싸움도 치열해졌는데, 삼성자산운용이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수 인하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죠. 
 
문제는 보수 인하라는 것이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긴 하나 사실상 업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ETF 자체가 공모펀드 평균 대비 보수가 낮은데, 여기서 더 낮춰버리면 사실상 ETF를 판매해도 회사 입장에서는 돈이 안됩니다. 돈이 안되면 상품을 만들고 운용하는 매니저들에게도 성과가 돌아가기 어렵겠죠. 매니저들에게 동기부여가 안된다면 상품의 운용 성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요. 결국 투자자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정말 투자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전략으로 보수를 낮췄다면 미국 지수 상품이 아닌 국내 주식형 ETF의 보수를 내렸어야 할겁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ETF는 국내 주식형 비중이 크고 미국 지수 상품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어차피 보수를 내려도 회사에서 손해볼 게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투자자를 위한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게 업계 평가입니다. 
 
이미 다수의 운용사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ETF 보수를 낮추기 시작했고, 0.01%(1bp) 수준까지 내린 곳들도 있는데요. 삼성자산운용이 1bp도 안 되는 0.0099%까지 낮췄다는 점은, 다른 운용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까지 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1위 사업자는 보수를 낮춰가며 경쟁할 여유라도 있지만 중소형사들은 보수 인하가 쉽지 않거든요. 
 
회사를 위한 결정도, 그렇다고 투자자를 위한 결정도 아니라면 이 최저 보수 전략은 누굴 위한 것일까요. 이런 제 살 깎아 먹기식 전략으로 업계 점유율 1등을 유지하면, 그 성과를 가져갈 소수의 경영진은 웃을 수 있겠죠. 업계 1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요. 다만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으로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하길 바랍니다. 누가봐도 '1등 회사는 다르구나'하는 게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요?
 
삼성자산운용 홈페이지의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보수 인하 공지 화면. (사진=삼성자산운용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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