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황민규

(2014 산업 10대뉴스)삼성전자, 7년만에 반도체 직업병 공식사과

반도체 백혈병 등 산업재해 논란 분기점..SK하이닉스도 잰걸음

2014-12-23 11:00

조회수 : 3,54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삼성전자(005930)가 7년의 침묵을 깨고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던 고(故)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지며 관련 문제가 불거진 지 7년 만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된 데다, 이재용호 출범 이전에 부담을 덜겠다는 삼성의 의도도 한몫 작용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백혈병 문제를 진작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권 부회장은 그러면서 "지난달 9일 가족과 반올림, 정의당 심상정 의원 측에서 제안한 내용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당사자와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간의 입장에 비춰보면 상당히 전향적 태도였다.
 
어렵사리 협상대가 마련됐지만 삼성전자와 반올림, 피해자 및 가족들과의 협상은 아직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의 사과 이후 업계 전반에 걸쳐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000660)도 지난 10월 직업병 문제와 관련한 피해 실태조사 및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정식 출범시켜 관련 문제 해결에 나섰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NEWS1)
 
◇삼성전자, 반도체 금빛성장의 '치부' 도려낼까
 
삼성전자와 피해자 및 유가족, 반올림은 지난 5월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양측은 당시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세 가지 의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듯 했지만 이후 피해자를 어디까지 산정할 것인가 등의 기준을 놓고 대립했고, 공식사과 문제 등도 다시 거론되면서 공회전을 거듭했다.
 
이 가운데 협상주체마저 분열되며 혼선을 겪었다. 반올림측 협상단에 속해있던 송창호씨 등 6명이 반올림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삼성전자-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를 세워 별도의 협상 주체로 나선 것. 이에 따라 반올림측 협상단에는 황상기씨를 포함한 피해자 가족 2명, 가대위에는 6명의 피해자가 포진하게 됐다.
 
피해자 측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가장 큰 이유는 보상안 마련에 대한 입장 차이, 조정위원회 설립에 대한 의견 대립이었다. 가대위의 경우 협상단에 포함된 피해자를 중심으로 보상방안을 마련한 이후 추후 보상 대상자들을 늘려나가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반올림 측에서는 신청한 모든 이에게 일괄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조정위원회 역시 가대위는 원활한 교섭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반올림은 설립 자체를 거부했다.
 
이 가운데 이달 초 삼성전자와 가대위는 김지형 전 대법관(조정위원장)을 중심으로 정강자 교수, 백도명 교수로 구성된 조정위원회 설립에 동의했다. 삼성전자는 약 2주간 이들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유보하다 결국 후보들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하는 데 동의했다. 특히 백 교수의 경우 반올림에 편향된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조정위원 동의 여부를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반올림 관계자들이 '일부 피해자 우선 보상 방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사진=뉴스토마토)
 
◇두 달 만에 재개된 협상, 타결은 내년으로 전망
 
지난 18일 반올림이 조정위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삼성전자, 가대위, 반올림이 두 달 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다만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기류가 흐르며 향후 협상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가대위 측도 반올림의 역할은 "협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협상 주체가 피해 당사자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이들이 한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지난 10월8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9차 협상 이후 처음이다. 당시 가대위는 대법관을 지냈던 김지형 변호사를 중심으로 하는 조정위원회를 설립하자고 제안했고, 삼성전자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반올림 측이 조정위 설립을 거부하며 협상은 중단됐다. 그러다 지난 15일 반올림이 피해자 보상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 세 주체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반올림 측은 "조정위가 조정 절차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다고 보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교섭중단 상황을 계속 방치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조정 절차에 참여해 내용 있는 사과와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 배제 없는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반올림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면서 수개월간 공전을 거듭해 왔던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 보상 문제도 속도를 내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당초 예상보다 조정위원회의 권한이 중추적인 역할로 부각되면서 협상이 조기에 마무리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기존 협상에서 난항을 빚었던 문제들이 다시 충돌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만약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대해 반올림 등의 교섭 주체가 반대로 일관할 경우 조정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 황민규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