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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로에선 동반성장)③'시장' 아닌 ‘제도화’가 답이다!

2012-06-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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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이명박 정부 이후 제기된 '경제민주화', '공정사회' 등의 문제제기는 결국 ‘재벌개혁’으로 이어져 지난 총선 시즌 내내 유행가처럼 퍼져 나갔다. 대·중소기업간 ‘양극화’에 대한 현실 인식은 ‘동반성장’으로 이어졌다.
 
최근 학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슈들이 개별적인 사안이라기보다 서로 깊이 연관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등의 문제 인식은 결국 경제(성장)와 복지(분배)가 어우러진 ‘정의로운 사회 패러다임’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반성장의 진정한 의미는 지난 참여정부에서 언급된 ‘상생‘보다 더 상위에 위치한 개념”이라고 규정하면서 “중소기업과의 협력뿐만 아니라 정부 특혜를 업고 고속성장한 대기업이 국민 전체에게 진 부채를 상기시키는 의제”라고 설명했다.
 
또 중소기업계에서는 동반성장에 대한 요구가 단순히 중소기업의 살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기업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를 따져보면 실상 대기업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지탱하는 기반은 바로 중소기업이다. 쉽게 말해 공생관계인 셈이다.
 
물론 대기업 총수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시스템이 ‘주주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게끔 설계돼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사회·경제적 정의가 아니라, 주주의 이득을 최우선가치로 여기는 시스템의 문제다.
 
이는 최근 장하준 캠브리지대학교 교수가 주장하듯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인 동시에 시장경제 자체에 내재된 오류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대기업이 하나의 인격체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현실 대기업은 더 이상 정주영, 이건희 등 ‘회장님 카리스마’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오직 주주의 이익을 위해 작동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이 시장자율로 이뤄지기 가장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즉 정부의 강력한 시장원칙 수립과 동반성장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법제화 과정 없이 는 동반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익공유제’, 정부 유인책 필요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뜨거운 논란을 낳았던 ‘이익공유제’ 논쟁은 한국 경제에 팽배한 ‘시장지상주의’ 세력의 지적 기반이 예상보다 부실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듣도 보도 못했다던 이익공유제는 선진국에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된 성장모델”이라며 “이익공유제에 대한 논쟁은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아니라 대부분이 ‘무지’에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비생산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운찬 前동반성장위원장
 
실제로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이 주장했던 이익공유제는 롤스로이스가 항공기 엔진을 개발할 때 표준사업 모델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세계 2위의 항공기 엔진 제조사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롤스로이스는 오는 2013년 상업 비행 예정인 '에어버스350' 엔진 개발 프로젝트에서는 협력사의 투자 기여도를 종전의 30%에서 40% 수준으로 더욱 높일 계획이다.
 
이익공유제와 유사한 개념인 순이익공유제의 경우도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의 건설업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모델이다.
 
북유럽에서는 복수의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사를 수주한 경우, 공사비용을 사전에 보상하고 사업이 끝난 뒤에 미리 합의한 비율에 따라 건설사 간에 손익을 공유하는 방식이 일반화 되어있다.
 
이익공유제에 관한 모델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공유 대상이 되는 이익에 따라 판매수입 공유제, 순이익공유제, 목표초과이익공유제 등 다양한 형태로 파생된다. 이 과정에서 개별 국가 정부는 기업을 정책 과정의 참여자로 유인해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차별적인 제도를 적용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협약’을 기반으로 대기업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성과공유제‘만 고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11일 지식경제부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45개 대기업 CEO들은 지식경제부와 ‘성과공유제 자율추진 협약 체결을 강행했다.
 
◇최근 '성과공유제' 장관을 자처하며 홍보 활동에 나선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동반성장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성과공유제 추진 자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지만, 제도적 결함 등을 감안하면 시장에 확산되기도 어렵고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할 것”이라며 “오히려 현행 대중소기업의 납품체계에서 중소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의 한 관계자도 “이익공유제에 대한 대기업 유인책으로서 동반성장지수 인센티브가 존재해야한다”며 “성과공유제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은 대기업에 대한 선물세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지배자’가 아닌 ‘법적 정의’에 의한 동반성장
 
중소기업계에서는 3배 손해배상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의 법제화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등에게 직접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임시국회에 여야 의원들은 납품단가 협상권 도입과 대기업 기술자료 탈취·유용에 대한 3배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합의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편 적합업종 제도의 경우 오랫동안 ‘고유업종’이라는 명칭으로 지난 2006년 이전까지 시행되던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경부는 여전히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을 양산하고 있는 LED를 포함한 조명산업은 원래 중소기업 고유업종이었지만 고유업종 제도가 폐지된 이후 LG나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진출한 이후 시장수익률을 상회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취지를 살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관련 규제조치를 담은 법제화에 나서는 것도 이같은 시장 불균형 때문이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영역 확장에 대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또한 이명박 정부 등장 이전까지는 마땅한 법적 근거를 지닌 제도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자에 적합한 영역에서 균형 발전하는 제어장치였던 것이다.
 
출총제가 대폭 완화된 지난 2007년 이후 대기업은 중소기업, 생계형 소상공인들이 영위하는 업종에 진출해 시장 수익을 독점하고 있다. 법제도를 ‘시장자율’로 풀어 헤친 정부 정책 차원의 실책이 명확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무소속 정태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산총계 상위 30대 그룹 전체 계열사 수는 2006년 500여개에서 2011년까지 1087개로 무려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30대 재벌의 매출액 비중도 60%에서 3년만에 67%로, 자산도 2007년 37%에서 2010년에는 55%로 각각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 지식경제부 등 동반성장을 좌지우지하는 권력기관은 여전히 중소기업 적합업종, 이익공유제 등의 동반성장 법안이나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금지 등 법적 근거가 수반된 정책에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위평량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전속고발권 폐지, 중소하도급기업에 대한 선별적 카르텔 허용 등이 대안이 될 수 있고, 경제적 강자의 우월적 지위남용에 대한 예외없는 엄단도 강조되어야 한다”며 “재벌정책으로는 순환출자금지, 의무공개배수제도 도입, 지주회사행위규제강화, 금산분리원칙 재설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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