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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유럽 가스대란 속 러-우크라 협상

2009-01-0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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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 분쟁으로 유럽 일부 국가에 난방이 끊기면서 수십만 명이 추위에 떠는가 하면 한국 업체를 포함한 많은 기업이 휴업에 돌입하는 등 에너지 대란이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분쟁 당사자들이 지난해 12월 31일 최종 협상 결렬 이후 8일 만에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유럽 18개국 영향권..한국 업체 등 피해 확산 = 이번 양국의 가스 분쟁이 8일째 계속되면서 유럽 18개 국가에서 심각한 가스 부족 사태를 호소하고 있다.
 
현재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그리스, 이탈리아,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터키, 보스니아, 헝가리는 우크라이나를 통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며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폴란드, 몰도바 등은 공급량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비상 수급 대책을 강구 중이다.
대부분 국가가 비축분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한파에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이번 가스 중단의 여파가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까지 미치면서 우리나라도 얼떨결에 간접적 피해국이 됐다.
 
한국타이어 헝가리 법인은 헝가리 정부의 산업계에 대한 2단계 가스공급 제한 조치에 따라 7일 오후 1시(이하 현지시각)부터 공장 가스 공급이 중단되자 24시간 완전가동하던 생산라인을 멈추고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가스 대란이 현재 상태로 지속될 경우 하루 1만 5천 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한국타이어 공장은 이번 주말까지 4만5천 개 이상의 생산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법인 측은 "현재 생산이 전면 중단된 채 기존에 만든 제품에 대한 출하만 이뤄지고 있다."라며 8일 열리는 브뤼셀 협상에 기대를 걸고 전 직원이 비상 대기 중이라고 밝혔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도 8일 아침부터 공장 가동을 멈추고 이틀간 휴무에 들어갔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슬로바키아 정부는 현재 러시아산 가스공급이 끊기면서 비축량이 10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나, 산업계에 대한 가스공급을 제한하면 80일은 버틸 수 있다며 전날 기아차 등 가스 소비량이 많은 대형 공장들에 대해 생산 중단을 요청했다.
 
현재 장비 동파를 막을 수 있는 최소 수준의 가스만 사용하는 기아차 측은 가스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예정된 9일까지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1천500대 이상의 자동차 생산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슬로바키아는 브뤼셀 협상이 결렬되면 병원, 식품, 아동복지, 응급시설을 제외한 모든 시설에 가스공급을 차단
한다는 계획이어서, 이 경우 기아차를 비롯한 산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슬로바키아에서는 일부 삼성전자 협력업체가 가스 공급제한 조치로 긴급 비축생산에 들어가는 등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현대중공업 불가리아 법인은 공장 건물에 난방이 끊겨 직원들이 추위에 떠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헝가리의 삼성전자와 삼성SDI, 슬로바키아 삼성전자 공장은 아직은 정상적인 가스공급을 받고 있으나 상황이 악화할 경우 언제든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보고 대비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루마니아에 이어 크로아티아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러시아 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보스니아는 10만 가구의 난방이 중단돼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으며 현지 알루미늄 공장과 자동차 회사 `파모스'가 생산을 중단했다.

 
마케도니아도 최대 철강업체가 문을 닫아 1천 명의 근로자들이 휴가에 들어갔다.
특히 이번 가스 중단의 최대 피해국인 불가리아에서도 6만 5천 가구가 난방 없이 밤을 지냈으며 수도 소피아는 대중교통 난방을 중단했고 일부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다.
 
또 보스니아와 불가리아는 전기 난로가 동난 상태며 목재와 석탄 수요가 지난주보다 5배나 급증했다.
◇8일 만에 협상 재개 =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과 우크라이나 국영 가스회사 나프토가즈의 올레그 두비나 회장이 8일 오후 브뤼셀에서 만나 사태 해결 방안을 찾고자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감시하는 국제 감시단 구성을 논의할 예정이며 가스 채무와 올해분 가스 가격 문제가 협상 의제로 다뤄질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이들은 전날 밤 모스크바에서 전격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했지만 둘 사이 어떤 돌파구를 찾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상호 비방전을 벌여 온 양측이 과연 합의에 도달할지 유럽 국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브뤼셀 협상에서 별 진전이 없더라도 곧바로 모스크바로 돌아와 협상을 계속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가 이뤄지려면 지난해 11~12월분 가스채무와 올해분 가스 공급가격 등에 대한 의견 접근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
러시아는 전날 우크라이나가 유럽 수준의 시장 가격(1천㎥당 418달러)을 지급하고 밀린 대금을 갚으면 가스 공급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201~230달러 선을 주장하면서 250달러 이상을 러시아가 요구한다면 러시아 또한 인상된 가스통과료를 우크라이나에 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어느 한 쪽이 순순히 물러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바라는 EU 역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우크라이나의 채무를 대신 갚아 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도 우크라이나에 불리하다.
 
나프토가즈는 전날 언론 배포 자료를 통해 "가즈프롬이 모든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떠넘기려 한다."라면서 "이는 유럽 국가들에 오해를 유도하고 나프토가즈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가 강추위에 상당기간 가스관을 텅 빈 채로 남겨두면 가스 시설 전반에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다."라면서 "이를 수리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결국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도 그만큼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각국 가스 공급 재개 촉구 = 양측이 협상에 들어간 가운데 `거래성사'를 바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파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마찰에도 불구, 유럽 국가들과 맺은 계약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메르켈 총리는 "조속한 사태 해결을 바란다."라고 브뤼셀 회담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도 이날 "현 상황은 유럽 전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계약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에밀 보크 루마니아 총리는 "유사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다른 에너지 공급처를 찾아야 한다."라며 EU 측에 대책 강구를 주문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을 용납하기 어렵다. 수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에 유럽 국가들이 곤경에 처해 있다."라면서 조속한 가스 공급 재개를 촉구했다.
한편, EU는 양국 정상이 국제 감시단 구성에 동의함에 따라 러시아산 가스 공급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줄 전문가들을 수일 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보낼 방침이다.
 
(부다페스트.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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