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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욱

(정해욱의 가요별점)돌아온 아이유, 후크·노출·전자음 말고

2014-05-16 08:21

조회수 : 1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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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가 새 앨범을 발매했다. (사진=로엔트리)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아이유가 돌아왔습니다. 16일 새 미니앨범 ‘꽃갈피’를 발표했는데요. 과거의 명곡들을 재해석한 리메이크 앨범입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노래 ‘금요일에 만나요’와 지난달 나온 ‘봄 사랑 벚꽃 말고’ 등을 통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유는 또래의 여자 아이돌 가수들과는 뭔가 다른 음악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이번 앨범엔 여자 아이돌들의 노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가지가 없습니다. 듣는 사람이 노래를 저절로 외우게 될 때까지 끝없이 반복되는 후크가 없고, 팬들의 귀보다는 눈을 먼저 사로잡으려는 의도적인 선정성이나 노출도 없습니다. 그리고 귀를 찌르는 자극적인 전자음도 없습니다.
 
‘꽃갈피’엔 오랜 시간 동안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들이 두루 실렸습니다. 평소 옛 노래들을 즐겨 듣는 아이유가 직접 선곡한 곡들인데요, 아이유의 음악 취향을 엿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의 트랙리스트. (사진=로엔트리)
 
1985년 발매됐던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가 1번 트랙에 실렸습니다. 옛시절 첫사랑을 떠올리는 감성적인 노래입니다.
 
옛 노래를 리메이크할 때 가수 입장에서 풀어야할 숙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원곡이 갖고 있는 감성과 느낌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유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냈습니다. 이제 스물 한 살이 된 가수가 말이죠. 아이유가 80년대의 노래를 이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입니다.
 
‘나의 옛날이야기’는 풋풋한 첫사랑에 대해 경험한 뒤 적어도 10년쯤은 지난 뒤 불러야 충분한 감정이 배어나올 만한 노래입니다. 원곡이 발표됐던 당시 조덕배의 나이가 스물 여섯이었습니다. 조덕배의 원곡에 아이유만의 소녀 감성이 더해져 풋풋한 느낌을 풍깁니다.
 
2번 트랙엔 1991년 발매됐던 故 김광석의 노래 ‘꽃’이 실렸습니다. 이 노래에 대해선 가장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나머지 수록곡들과는 다른 이 곡만의 특별한 점이 있어서인데요.
 
3번 트랙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1990년에 발표됐던 김완선의 히트곡입니다. 아이유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가지 걱정됐던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유가 김완선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면 어떡하지?”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유는 김완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노래를 소화해냈습니다. 노래를 듣는 내내 ‘댄싱퀸’ 김완선에 대한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아이유는 힘을 빼고 읇조리듯 노래를 합니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유의 창법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이유는 “김완선 언니가 이 노래를 어떻게 부른진 모르겠지만 전 이렇게 부를래요”라고 하듯이 2014년판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탄생시켰습니다.
 
리드미컬한 전주가 인상적인 곡인데 이번 수록곡 중에 가장 멋지게 편곡이 된 것 같습니다.
 
◇가수 아이유. (사진=로엔트리)
 
이문세가 1987년 발표한 노래 ‘사랑이 지나가면’이 다음 트랙에 있습니다.
 
사실 아이유의 입장에선 ‘나의 옛날이야기’보다 더 부르기 힘들 수도 있는 곡입니다. ‘나의 옛날이야기’는 옛 노래이긴 하지만, 첫사랑에 대해 노래한 곡이기 때문에 아이유 나이 때의 소녀 감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지나가면’은 이별의 기억을 자극하는 슬픈 곡입니다. 사랑과 이별,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경험은 있어야 원곡의 느낌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유는 이 곡도 기가 막히게 소화해냅니다. 애틋함과 쓸쓸함을 표현해내는 아이유의 목소리가 신통합니다.
 
1984년에 발표된 산울림의 ‘너의 의미’가 5번 트랙에 담겼습니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직접 피처링에 참여했습니다.
 
따뜻한 분위기의 이 노래를 통해 아이유는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사랑스럽고 소녀 같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노래 중간 김창완의 목소리가 들어가는데요.
 
두 사람의 노래는 선후배 간의 콜라보레이션이라기 보다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두 뮤지션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2014년을 대표하는 스물 한 살의 가수 아이유와 1984년을 대표하는 서른 살의 가수 김창완이 시간 여행을 통해 만난 뒤 듀엣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김창완의 변함 없는 목소리가 여기에 한 몫을 한 것 같은데요. 아이유는 음악을 통해 20대와 60대가 교감을 이뤄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유가 이번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6번 트랙은 1988년 발표됐던 故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입니다. 탁한 음색을 지닌 그의 노래를 아이유는 맑고 고운 느낌으로 불러냈습니다. “부드러운 노랫소리에 내 마음은 아이처럼 파란 추억의 바다로 뛰어가고 있네요”와 같은 밝은 느낌의 가사들이 포함돼 있는 노래라 아이유의 음색에 썩 잘어울립니다. 이 노래는 가수 윤상의 작곡가로서의 데뷔곡이기도 한데요, 아이유는 윤상과 지난 2011년 발표됐던 노래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통해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죠. 윤상의 감성적인 곡과 아이유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노래네요.
 
마지막 트랙엔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가 실렸습니다. 지난 1996년 발표돼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댄스곡이죠. 클론은 이 노래에 직접 랩 피처링을 했는데요.
 
아이유의 ‘꿍따리 샤바라’는 원곡과는 전혀 다릅니다. 강렬한 느낌의 원곡과는 달리, 하와이안 훌라 리듬으로 시작되는 아이유의 노래는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하와이 해변의 파라솔 아래에 편안히 누워 있는 아이유의 모습이 연상되는데요. 아마도 바쁜 스케줄에 쫓겨 사는 아이유가 원하는 여름 휴가가 바로 그런 휴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의 강렬한 스타일을 버리고 내레이션을 하듯 랩을 하는 클론의 파트도 흥미롭네요.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습니다.
 
◇아이유는 이번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로엔트리)
 
자, 이제 2번 트랙으로 다시 돌아가죠. 故 김광석의 노래 ‘꽃’입니다.
 
이번 앨범을 통해 아이유는 음악적 재능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30년전의 곡을 20대 초반의 가수가 자기 색깔로 재해석해내는 것. 웬만한 가수들은 못하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아이유는 또래 가수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적어도 한 발짝은 앞서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꽃’을 부를 땐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시험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요.
 
다른 트랙의 곡들을 부를 땐 원곡과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줬던 아이유는 '꽃'을 부를 때만큼은 故 김광석과 비슷한 방식으로 노래에 접근합니다. 故 김광석이 읇조릴 땐 아이유도 읇조리고, 고음을 지를 땐 아이유도 지릅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 노래를 썩 잘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치 고인이 된 존경하는 대선배 가수에게 “저 이만큼 컸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노래에 대한 아이유의 애정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유가 뮤지션으로서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짐작케 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을 통해 다시 한 번 음악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아이유의 10년, 20년 뒤 모습이 문득 궁금해지네요.
 
지난해말 ‘응답하라 1994’란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추억을 자극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이유의 이번 앨범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 같네요. ‘꽃갈피’는 발표되자마자 모든 수록곡이 온라인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줄세우기’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유의 이번 앨범이 인기를 끌면서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이 잇따라 발표되거나 음악팬들 사이에 옛 명곡 다시 듣기 붐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유는 오는 22일부터 서강대 메리홀에서 소극장 콘서트를 엽니다.
 
< 아이유 리메이크 미니앨범 '꽃갈피'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또 한 뼘 자란 국민여동생, 음악적 성장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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