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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름

(기고)내가 경험한 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

2019-09-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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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지 벌써 20년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공공복지전달체계를 전공분야로 하는 연구자로서 이 제도는 나에게 매우 남다르다. 학부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사회문제중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빈곤’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박사논문도 빈곤을 주제로 작성했다. 
 
공부를 시작했던 90년대 초반은 그나마 사회적인 수준이 높아져서 절대 빈곤은 점차 사라지던 시기였으나 청소년기 시절이었던 80년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2000년 5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새로 도입되는 기초법 대상자를 선별하는 일이었다. 기존에 비해 보다 체계적인 자산조사 과정이 도입되고, 수기로 작성하던 자료들이 전산화되어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부에서 정한 지침과 현실간에 차이가 있어 이러한 충돌의 완충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공무원이었다.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생계비 지급일은 항상 긴장되는 날이었다. 왜냐하면 여러 자료를 취합하여 생계비가 조정되는 가구들이 있었기에 그랬다.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생계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피난처였다. 한 가지 기억이 나는 것은 수급자에게 폭행을 당해 아직도 나의 몸에는 작은 흉터가 남아있다. 이 상처는 이따금 내가 나아가야만 하는 일을 주기적으로 상기시킨다. 가난한 자들의 분노, 국가에 대한 요구 그리고 존엄한 삶에 대한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일이 너무 많아 다음날 아침 출근길이 두려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서류업무에 파묻혀 현장을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 현장을 보면 이런 문제는 다소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달체계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인력이 배치되고, 다양한 서비스가 종합적이고 전문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추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여전히 힘들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공무원 생활은 나에게 제도개선에 대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현장출신 연구자가 되기로 하여 지금에 있다. 
 
기초법은 급여액이나 지급기준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인 ‘존엄한 삶’은 동일하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변동이 많은 사회이고 그런 사회일수록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제도는 의미가 지속될 것이라 본다. 제도가 보다 건강하게 운영되고 그 혜택을 보는 이들이 보다 안정적인 삶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지역에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취약자들에 대해 사례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재직 당시 경제적 어려움 이외에도 다양한 가족내 문제를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사례가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것에 맞춤형 지원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또한 복지는 권리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수급자들이 가져야 하는 의무는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권리가 공짜는 아니며 누군가의 부담으로 실현되는 것이라면 수혜자 또한 그러한 의무를 잘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의 작은 소망은 수급자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힘들고 어려울 때 국가에 손을 내밀고 이러한 것에 능동적이고 예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좋은 전달체계를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또한 복지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좋은 업무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주는 사람도 행복해야 받는 사람도 행복한 것이다. 
 
끝으로 전달체계 관련 의견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몇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적절한 인력충원이 필요하다. 업무는 과중한데 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은 부족하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무원들이 대상자에게 보다 전문적인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역량강화가 필요하다. 공무원들이 가치에 기반하여 서비스에 대한 민감성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셋째, 아동이 있는 취약가구에 대해서는 1대 1로 매칭을 하여 지원해줄 수 있는 지원자 연결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아동의 학습이나 진로 또는 가족 문제에 대해 지지적인 역할과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연계되면 좋겠다.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에 옆에 좋은 조언자가 있다면 큰 어려움이 올지라도 도움을 받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런 사례를 몇 번 보았고, 긴 시간이 흘러 모범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 본 적이 있다. 나 또한 그 수혜자 중에 하나이다. 끝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더 발전되어야 한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부양의무자 폐지 등 지속적인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
 
김이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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