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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토마토칼럼)게슈타포를 방치한 자들은 누구인가

2022-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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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타포(Geheime Staatspolizei). 원어 그대로의 뜻대로 비밀국가경찰을 말한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1930년대부터 패전까지 반대 세력의 정보를 수집하고, 잔혹하게 탄압한 집단이다. 그래서 이후에도 초법적 정보기관을 빗대는 말로 종종 쓰인다.
 
수십년 전 유럽 내 점령지에서 만행을 저질렀던 게슈타포가 2022년 목전을 두고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 있는 제1야당의 대통령선거 후보에 의해 소환됐다.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자당 의원과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통신자료 조회를 불법 사찰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슈타포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발언했다. 
 
같은 당 부산시당에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를 거론했다. 빅브라더는 강력한 통제를 바탕으로 사회를 통치하는 독재자를 의미하고, 이후 여러 문학과 영화, 노래 등에서 다양한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통신자료 조회를 문제 삼으려고 한다면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인 독일이나 허구의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어렵게 예로 들 필요가 없다. 검찰총장 출신 야당 대선 후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을 말하기도 했지만, 굳이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통신자료 제공 현황을 보면 지난해 상반기 전화번호 수 기준 공수처는 135건의 통신자료를 통신사로부터 받았다. 검찰은 59만7454건, 경찰은 187만7582건을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수치로 착오 또는 오타가 의심되지만, 사실이다. 
 
게슈타포를 언급한 당사자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20년 상반기 검찰은 100만3245건을 조회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에 가까운 수치를 나타내 만일 그 행위가 사찰이라면 훨씬 더 많은 불법이 자행된 셈이다. 이러한 내용은 통신자료 조회 때문에 국회에 불려간 공수처장이 이미 설명한 내용이지만, 국회는 이 행위가 사찰이냐, 아니냐로만 다투고 있어 굳이 그 수치를 반복한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이제 막 과기부 자료에서 신규로 포함된 공수처 등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근거한 절차로, 간단히 따져봐도 사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해당 조항은 '수사기관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가 우리 사회의 주목을 피해 압수나 수색, 체포처럼 밀행하게 이뤄져 왔는데, 단지 공수처 때문에 드러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시민사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영장주의 원칙에 반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으므로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공수처장을 다그치고, 그 반대로 감싸준 국회에 말이다.
 
계속된 시민사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방치한 국회는 사찰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국회를 방문한 공수처장을 몰아세우기 위해 피켓을 만들 시간과 노력 대신 그동안 어떠한 요구가 있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사찰이 아니라고 두둔해서도 안 된다. 수사기관도 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관행이란 이유로 더는 이 절차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정해훈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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