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해안가 마을 아라비안란타에는 로푸키리(Loppukiri)라는 특별한 노인 전용 주거단지가 있습니다. 2000년 헬싱키에 살던 은퇴한 할머니 4명이 '요양원으로 가지 말고 노인들이 함께 모여살 수 있는 집을 만들자'라는 뜻을 모아 시작한 공간인데요. '마지막 전력 질주'라는 뜻의 이름처럼, 로푸키리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활력을 유지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로푸키리는 '고독한 노년'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핀란드의 창의적 해법입니다. 급격한 고령화로 요양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노인 고독 문제가 심화되자 핀란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로푸키리는 단순한 주거 제공을 넘어, 노인들이 서로 돌보고 함께 활력을 되찾는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노인들은 이웃과 어울리며 스스로 삶을 가꾸어 나갑니다. 노인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핵심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델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노인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데요. 평균 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진 지금,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닌, 어떻게 노년기를 보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절실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은퇴자 마을 조성 특별법'은 눈여겨볼 만한 대안입니다. 이 법안은 노인 전용 주거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사회적,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노년층에게 안전한 주거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로푸키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노인들이 수동적인 수혜자로 남아 있는 구조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능동적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고령화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대한 과제입니다. 이를 고립과 절망의 미래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기회로 전환해보면 어떨까요. 로푸키리처럼 말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아라비안란타 마을에 자리한 노인 전용 아파트 '로푸키리' 모습. (사진=로푸키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