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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의눈)‘삼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2012-12-1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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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공정한 시장경쟁은 소비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킨다. 하지만 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을 넘어선 '흑색선전'과 '감정싸움'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지난 40여년간 한국 가전 시장을 양분해온 두 별, '삼성과 금성(LG)' 얘기다.
 
최근 기자가 만난 가전제품 유통업체 L마트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과열경쟁이 유통업체와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LG가 TV, 냉장고 등의 판매량 및 시장점유율에 '일희일비'하며 일부 유통채널에서 매출이 다소 줄었다 싶으면 곧바로 담당자를 추궁하는 식의 일이 잦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이 너무 잘 나갈때는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LG전자 제품에 대한 프로모션을 강화해야 하고, 반대로 LG전자 제품이 잘나가면 삼성 제품을 슬쩍 앞에 진열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두 회사의 매출을 일정하게 맞춰주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만한 얘기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은 한 번 구입하면 10여년 가까이 사용하게 된다. 또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제품의 브랜드 선택은 소비자 입장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또 시장에서 다수로부터 호평 받고 있는 제품을 인지해 선택하는 건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물론 유통업계의 입장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업계 '슈퍼갑'인 삼성전자·LG전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유통업체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정 제품의 판매량이 줄어들게 되면, 해당 지역을 총괄하는 관리자에게 '불호령'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유통업체에 대한 압력으로 이어진다. 즉 삼성 제품이 잘 나갈 때마다 '어떻게 LG 제품을 더 팔아야할까'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삼성-LG의 감정싸움으로 발생하는 폐해는 또 있다. 막강한 영업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두 회사는 위법행위도 불사하는 일부 직원들의 과격한 마케팅 관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양사 영업부서 직원들이 제품 안정성을 두고 격렬하게 충돌한 사례도 있었다. 
 
물론 두 회사의 네거티브 공세는 ‘삼성과 금성’ 시절부터 40여 년간 꾸준히 이어져왔다. 예를 들어 금성사가 ‘기술의 상징’이라는 기업 광고 문구를 만들면 삼성전자가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받아치고, 이를 금성사가 다시 ‘최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맞대응하는 식이었다.
 
이처럼 삼성-LG간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야 늘 있어왔지만 올 들어 가전업계, 디스플레이 부문 등 시장과 법정을 넘나들며 벌어지고 있는 날선 공방은 예년에 비해 유독 거칠고 잦아졌다는 평가가 많다.
 
업계와 소비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두 회사의 경쟁이 향하는 방향이 품질의 혁신 등을 통해 소비자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맹목적인 승부의식으로 이어져 오히려 소비자 주권을 훼손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방해한다는 인식에서다.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 간 선의의 경쟁은 기술발전과 소비자 복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경쟁은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로 해야지 경쟁사 헐뜯기로 일관해선 곤란하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가전업계 리더들답게 국내 시장을 놓고 유치한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세계 소비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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