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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야신이 처음 본 SK 구단 모습은 '가출소년집합소'

2013-11-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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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올해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는 리그 6위로 추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이 이끈 2007~2011년 SK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상대 팀이 방심을 하기 어려운 끈끈한 야구를 펼쳐 21세기 최고의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많은 사람은 'SK왕조'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곤 했다.
 
김성근 감독이 표현하는 SK와 선수들은 어떨까?
 
김 감독은 지난 18일 오후 인천대 23호관(대공연장)에서 열린 동북아경제통상대학 주관 강연 '一球二無의 정신'에 참석, SK 팀과 선수들에 대해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 경북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삼성그룹 주관 강연 이후 이달 들어 두번째로 열린 대학생 강연이다.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이 18일 오후 인천대학교 대공연장에서 동북아경제통상대학 주관으로 진행된 특별 강연에 연사로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사진=이준혁 기자)
 
◇처음 느낀 SK는 '가출소년집합소'
 
김성근 감독이 감독 부임 직후 처음 접한 SK의 모습은 '가출소년집합소'라는 단어로서 정리된다. 얼핏 들으면 '비행청소년'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가출'은 야구의 '홈(Home)'에서 유래된 김 감독의 조어였다. '홈으로 돌아와 점수를 따내지 못한다'는 내용을 김 감독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 감독은 "SK 처음 왔을 때 금마들(이 녀석들) 뭐하나 했어요. 지금이야 정근우가 75억인지 80억인지 받나 모르겠지만 키도 쪼그마한게 대체 뭐를 하겠나 했어요. 최정도 그렇고. 내가 백네트 뒤에 앉아있으면 얘들이 내앞에 지나가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요. 참 이 아이들 어떡하나 했어요."라며 "그런데 어쨌든 그 때부터 시작이에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SK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의 집합소냐면 '가출소년'의 집합소에요. 기록으로 보니 출루율이 1위, 타율 2위, 그래요. 그런데 얘네 야구는 3루까지 가고 홈으로 들어오지 못해요. 기록으로 보니 그런 야구 하더군요. 보통 안타 3개를 치면 1점은 내야 하는데 얘네들은 안타를 3개 쳐도 안 되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비상식을 통해 이기는 전력 만들다
 
이같은 SK 선수단 상황에 김 감독은 비상식의 속에서 상식을 찾고자 시도했다.
 
김 감독은 "그래서 '얘네 어떻게 고쳐야 하나' 싶어서 캠프부터 시작했어요"라며 "나는 어느팀을 가도 FA(자유계약선수)는 안 뽑아줘요. 참 희한한 운명이에요. SK 왔을 때도 한 명조차 안 뽑아줘, 나가면 나갔지"라고 말했다.
 
이어 "리더 위치에서 볼때 상식적인 형태로 그 속에서 움직이면 절대로 이길 수 없어요. 비상식적으로 해야 했고, 그 생각(상식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하면 이 팀 못 가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어요. 확실하게 (상식을) 끊었어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SK 감독 당시 인천 문학구장의 펜스 높이를 높였던 사연을 밝혔다. 그는 "당시 여기 야구장(인천 문학)은 양쪽이 90m로 좁아요. 좁. 툭하면 (공이 담장위로 넘어) 가버려요. 그래서 8m 올렸죠"로 말했다.
 
그는 "올린 후 뭐를 했냐면 가령 펜스 상단에 맞았을 때, 중단 맞을 때, 하단 맞았을 때 돌아오는 볼 어떠냐 봐야 돼요. 매일 연습했어요. 상단 맞으면 수직으로 떨어져요. 중단맞으면 이리 떨어져요.(앞쪽 표시) 이 때는 빨리 발로 뛰어가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단 맞으면 외야수 여기 서면 돼요(펜스앞), 여기 맞으면 여기서 잡으면 되고(펜스 중단), 여기는 맞으편 튀어나가는 스피드가 있으니까 이거 이용하면 돼요(펜스 하단). 이 세 곳의 수비 위치가 바뀌어요"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 훈련처럼 발생 확률이 적은 상황까지 대비한 이유에 대해서 "세상살이를 이기는 사람은 당연한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색다르게 할 필요없어요"라며 "거기서 이길 수 있는 거에요"라고 밝혔다.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이 18일 오후 인천대학교 대공연장에서 동북아경제통상대학 주관으로 진행된 특별 강연에 연사로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사진=이준혁 기자)
 
◇정대현과 이승호의 '사용법'
 
김 감독은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후 팀을 떠나간 정대현과 이승호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는 세밀한 부분도 알고 업무을 진행해야한다는 부분에서 SK 선수의 예를 들었다.
 
정대현에 대해서는 "정대현은 인사성도 좋아요. 그래서 걔는 공 하나 던질 때마다 땅바닥에 인사해요"라며 사이드암 투수인 정대현의 투구 폼을 직접 재현했다.
 
이어 "보통 투수 퀵모션이 1.2초정도 되면 주자가 뛰기 힘들어요. 그런데 정대현은 퀵모션이 1.4초가 넘어요. 그래서 1루 주자는 2루에 쉽게 가요. 따라서 1루에 주자가 있다면 정대현을 내면 안 되요. 하지만 주자가 없을 때 아님 2루에 주자가 있을 때는 상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승호에 대해서는 "걔는 주자가 없을 때 베이스가 하나라도 비어있지 않으면 쓰기가 어려워요. (마운드에) 내보내면 꼭 볼볼볼부터 시작해요. '또 시작했구나' 싶어요"라고 말하며 좌중에 웃음을 불렀다.
 
이어 "이승호가 처음 롯데에서 등판할 무렵 2사 만루 상황에 (마운드에) 나갔어요. '아.. 여기서 내면 안될텐데. 포볼로 나갈텐데..' 싶었죠. 걔는 참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결국 밀어내기 포볼이에요. 그 다음에 이승호가 결국 2군으로 갔더군요"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당시 롯데 감독이었던 양승호 전 감독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양승호가 2군가지 왜 이승호가 2군가냐' 싶었어요. 왜 선수의 특징을 모르냐 싶어.."라고 말했다.
 
◇김광현이 개막전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김성근 감독의 사진 중에는 덕아웃의 자리에 앉아 손으로 무언가 적는 모습이 많다. 그만큼 김 감독은 자주 메모하고 이를 살핀다. 실제로 김 감독은 메모하는 습관과 메모에 포함된 의미를 중시했다.
 
김 감독은 선수에 대한 분석과 자료의 효율적인 활용을 설명하며 "나는 전력분석팀에서 관련 데이터를 뽑아준 것을 모조리 수작업을 해야 돼요"라면서 "여러분들 아셔야할 것은 듣고 보고가 문제가 아니라 뭐든지 써야 해요. 그래서 메모가 중요한 거에요. 쓰는 것은 머릿속에 남아요. 보고 듣는 것은 흘러가버려요"라고 말하며 메모의 중요성을 적극 강조했다.
 
이어서 김 감독은 그가 여지껏 다녔던 강연 중 처음 밝히는 것이란 말과 함께 배터리(투수-포수) 활용과 관련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초구를 볼 던졌다 할 때 몸쪽에서 직구가 볼이냐, 바깥쪽 직구가 볼이었냐, 변화구가 볼이였냐, 거기에 따라 각각 상대방 배터리가 바뀌어요"라고 시작된 설명은 청중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김 감독은 김광현이 개막전에 나오지 않고, 류현진(현 LA다저스)와 맞상대시킨 적이 없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김광현은 상대방 넘버3·넘버4 투수와 던졌어요. 그렇게 되면 김광현은 15승 해요. 야구는 확률"이라며 "김광현은 확실하게 1승해야 한다. 걔(김광현)는 '1승 카드'인데"라고 개막전이나 류현진 상대 경기에 나서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지는 경기에서는 나를 탓했다"
 
'야신'으로 불리는 김 감독도 지는 경기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지는 경기 이후 숙소인 송도로 걸어가며 스스로를 탓했고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야구장에 나섰다.
 
김 감독은 "(경기를 패하면) 경기 끝나고 집에 걸어가면서 처음에는 욕을 했어요. '이 놈은 이걸 못하나', '저 놈을 저걸 못 하나' 하면서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러다가 송도 넘어가는 다리(송도1교)를 지날 때쯤 되면 결국 '내탓이다'가 됐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져요. 일이 풀렸어요"라고 말했다.
 
강연 후반에 김 감독은 SK 감독 당시 실전 훈련을 강화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난 어느 팀이건 내가 갈 때마다 내가 하는 야구가 바뀌었어요. 사람들은 (방식이) 똑같다고 말하는데 똑같은 야구를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내가 SK에서 안 하던 것을 한 경우가 매일 홍백전 지시를 한 거에요. 원래 (나는) 홍백전 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SK에선 매일 홍백전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SK에서는 실전 속에서의 베이스런닝 감각을 키워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홍백전을 치를 때 실제 시합보다 더욱 익사이팅하게 해요. 내가 뒤에서 보니 아찔아찔할만해요. 시합하며 부상자도 많았아요. 우리끼리 붙는데도 힘줄이 나가는 아이가 있었으니까"라며 "SK 선수는 1년내내 시합의 감각이 있어요. 이것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아무것도 아닌 것같지만 어마어마한 거에요"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 감독은 인천대 강연을 통해서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일화 이외에도 현재 지휘봉을 잡은 고양 원더스에서의 모습, 평소 야구에 대한 생각과 관점 등은 물론 강연 대상인 대학생을 비롯한 다수의 청춘에게 도움될 만한 교훈적인 내용을 전했다. 특히 인천대가 위치한 인천 연고 구단인 태평양과 SK에 관련된 이야기와 송도 생활에 대해 언급하며 청중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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