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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숨죽인 SK, '태풍의 눈'에 접어들다

2014-02-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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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태풍의 눈이다. 불안한 고요로 가득하다. 총수의 장기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내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형제를 나란히 법정에 잃은 재계 서열 3위 SK의 현 모습이다.
 
SK그룹 관계자는 28일 전날의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듯 "어제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각 위원회 최고경영진이) 긴급회의를 개최하긴 했지만 경황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이어 "조직 개편 등은 정해진 게 없고, 일단 어제 회의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있는 단계"라고 전했다.
 
변호인단도 아직 최 회장을 접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 변호인을 맡았던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이공현 변호사는 "어제 선고 직후 구치소에 최 회장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며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참혹한 재판 결과를 예상치 못한 탓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되자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는 게 복수의 관계자들 전언이다. 몇몇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 등에게서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동시에 부담도 그만큼 가중됐다는 게 고위 관계자의 고백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03년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법정구속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항소심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5년이라는 일명 '총수 정찰제'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파기환송을 기대했지만 대법원은 전날 실형을 확정 판결했다.
 
최 회장은 징역 4년형이 확정된 만큼 이미 형이 집행된 1년을 포함해 앞으로 3년의 시간을 잉여의 몸으로 보내야 한다. 변수가 없다면 복역기간은 2017년 1월까지다. 함께 수감된 동생 최재원 부회장 역시 2016년 9월까지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최 회장 형제가 진두 지휘했던 글로벌 사업과 신규 사업 진출, 대규모 투자 등의 의사결정은 전면 보류될 위기에 처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내놓는 등 방향을 경제활성화로 고쳐 잡았는데, 그 흐름을 SK는 탈 수 없게 될 것 같다"며 "공격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SK 내부에서 특단의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누군가는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특히 법정진술을 바꾸는 등 사실상 재판부를 농락하는 치명적 전략 실수가  드러나면서 최고위급의 자진사퇴 등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눈치다. 이는 곧 '인사태풍'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자리하고 있지만,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 기구로 버틸 순 없다"며 "또 우리나라 기업문화 특성상 현재 CEO급에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인데, 누구로든 결정되면 전면적인 인사이동이 있을 수 있다"고 점쳤다.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책임경영을 하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통해 최 회장의 법정구속에 대비해 왔지만 장기화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는 곧 총수가 그룹임을 의미하는 우리나라 지배구조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최 회장의 경영복귀를 위해 남은 희망은 가석방과 특별사면뿐이다. 최 회장 역시 대통령 특별사면의 수혜를 입은 전력이 있다. 2003년 분식회계 사건 당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던 최 회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이후 사면받았다.
 
대통령 사면은 불우·생계형 범죄자에서부터 공안·노동사범, 재벌총수,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대체로 신정부 출범 100일·광복절·석가탄신일·성탄절·신년 등을 기점으로 이뤄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2009년 12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1인 사면하기도 했다.
 
문제는 여론이다. 노무현 정부는 9차례, 이명박 정부는 6차례 사면권을 행사했다. 사면권을 남용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면서 대상과 횟수 모두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도 지난 설 특사 대상에서 사회지도층 범죄를 제외했다. 경제민주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정부의 특별사면 대상자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이 주요 경제인으로 포함됐으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특사로 혜택을 누렸다.
 
박근혜 정부 초기 사면에 대한 경계 기조는 이어졌다. '경제민주화' 바람은 한풀 꺾였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 특히 유전무죄무전유죄 관행에 대한 근절적 국민 바람은 여전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통령이 권력형 비리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는데, 사면이 쉽사리 추진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가석방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다만 박 대통령이 임기 1년차의 서슬퍼런 칼날을 거두고 경제활성화로 국정목표를 고쳐잡은 만큼 사회통합 차원에서 사면을 검토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가 현재 사면에 대해서는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가능성을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SK그룹 사옥(사진=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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