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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이재용의 과제

2014-05-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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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이재용 사장이 자동차용 차세대 전자부품에 관심이 많다. 오늘 독일 현지에서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을 만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자동차 업계에 대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예정이다."
 
이례적이었다. 지난 2012년 5월7일,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이었던 이인용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당시 사장)이 자동차용 전장 쪽으로 경영 보폭을 넓혔다며, 구체적 일정까지 공개했다. 삼성이 그간 총수 일가의 일정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앞선 2011년 10월 댄 에커슨 GM CEO를 만난 데 이어 2012년 1월과 2월에는 아키요 도요타 사장과 노베르트 라이트호퍼 BMW 회장을 차례로 만났다. 이어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사인 엑소르 그룹의 사외외사로 선임되며, 명실 공히 삼성의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5월 들어서는 이인용 팀장 설명대로 7박8일 간의 유럽출장 기간 마틴 빈터곤 폭스바겐 회장을 만났고, 하반기에는 앨런 멀럴리 포드 최고경영자와도 미팅을 가졌다. 가히 광폭 행보로, 삼성을 등에 업은 황태자의 출격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흘렀다. 당초 기대대로 자동차용 부품 사업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난관이 많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내부 기밀이라고 하지만 드러난 성과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역량은 또 한 번 도마 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게 됐다.
 
굳이 과거 'e삼성'의 실패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진두 지휘해 온 LCD(액정표시장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의 주요 부품사업 영역이 현재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도 그에 대한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부추기고 있다. 이재용 시대를 맞아야 하는 삼성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News1)
 
◇삼성그룹 부품사업 총체적 난국
 
삼성SDI, 삼성전기 등 주요 부품 계열사 관계자들은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에 대해 매출 발생 시점까지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뿐만 아니다. 고속성장하던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업체 간 원가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는 '갤럭시 효과'에 기대던 삼성그룹 내 전자부품 사업구조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삼성전기(009150)의 경우 카메라 모듈 등 스마트폰 탑재 부품 이외에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부품 시장 진출을 모색해 왔지만, 인증 획득 및 안전성 검증, 생산 유지 등 사업적 호흡이 긴 자동차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경쟁사인 LG이노텍은 스마트폰 일변도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전장부품 부문에서 전체 매출의 17%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삼성SDI(006400) 역시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9% 감소, 127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스마트폰 불황의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2차전지 사업에서 최상위권의 시장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PDP 성장 정체와 CRT의 급격한 외형 축소를 상쇄할 만한 신사업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부품사인 삼성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향 중소형 유기형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서 영업이익 대부분이 발생하는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사업부문이 LG디스플레이, 재팬디스플레이 등 경쟁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LCD는 지난 수년간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을 수차례 방문하며 샤프 등 주요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주도했던 영역이다.
 
지난해 이 부회장이 샤프와 이그조(IGZO) 패널 공급 계약을 체결해 노트북 제품에 탑재할 예정이었지만 소리 소문 없이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노트북 사업 자체가 태블릿PC 사업에 밀려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분위기인 데다, 태블릿PC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OLED 디스플레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고성능 LCD의 설자리가 애매해졌다는 평가다.
 
전자부문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혔던 복합기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샤프와 복합기 합작을 위해 자금 지원, LCD 패널 구입 등의 ‘회유책’을 제안하는 등 사업 합작에 열의를 보였지만 결국 무산됐다. 1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이는 일본 내 일부 경제지가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삼성 측의 항변도 논리가 있다. 이 부회장이 특정사업 부문을 관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전체적 조율 차원에서 봐 줘야 한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삼성이 각 사업부문별로 책임지는 시스템 경영이 자리한 상황에서 그가 진출한 사업마다 제 길을 못 찾고 있는 점은 분명 부담이다. 더욱이 큰 틀에서 경영을 내려다보는 직관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재용 시대, 풀어야 할 난제들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 이어 삼성그룹을 이끌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문제와는 별개로 당장 풀어야 할 숙제들도 산적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무 여건,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등 노동 현안을 비롯해 지난 2007년 삼성중공업의 태안반도 기름유출 이후 가시화된 법정 공방, 애플과의 특허 소송 등은 미결 과제로 남아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우, 협력사 노조 설립 이후 생활고가 가중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가 2명이나 발생했다. 사회적 이슈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인다. 지난해 말 삼성 고위 관계자는 "미수금 문제 등 직원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지난 3월 차량 지원 발표 이후로는 마땅한 해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사측이 명시한 ‘독소조항’으로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유니폼 입은 전태일 흉상(사진©News1)
 
반도체 공장 백혈병 논란의 경우 권오현 부회장의 공식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삼성전자 간 협상이 이달 28일부터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수년간의 논쟁이 한 번의 만남으로 해소되리라 기대하긴 힘들다. 특히 반도체 공장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해법을 놓고 양측의 대립각이 날카로운 양상이다.
 
삼성의 이번 결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문제 발생 이후 9년여의 시간이 남긴 상흔이 컸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반올림 쪽 주장에 따르면, 삼성 직업병 피해자는 180여명, 이중 사망자는 70여명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는 등 여론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삼성이 마지못해 수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용 시대 개막에 앞서 부담을 더는 차원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지난 2007년 삼성중공업의 충남 태안 기름유출사고 손해액 사정을 놓고 피해자들과 벌이고 있는 법정 공방도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원유 1만2547킬로리터(㎘)가 유출된 대형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총 3600억원을 보상금으로 책정했지만 현지 주민 및 관계자들이 손해액 사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대전지법에서는 앞으로 총 9만여명에 대한 판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목숨을 끊은 주민만 4명에 달한다.
 
◇갈림길에 선 삼성, ‘제2의 도약’ 가능할까
 
사업 측면에서도 삼성은 갈림길에 서 있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2~3년간 눈부신 성장을 기록해 왔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포화와 함께 '괴담'처럼 여겨졌던 ‘위기론’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70% 이상을 차지하는 스마트폰 사업의 경우 지난 2012년 30.3%의 점유율을 보인 이후 상승률이 정체돼 있다. 지난해 4분기에는 IM부문의 영업이익이 무려 1조2000억원 가까이 증발하며 ‘스마트폰 쇼크’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삼성은 차세대 먹거리를 위해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을 선정하고, 오는 2020년까지 총 23조원을 투자해 5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뒤 약 4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고위 관계자는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인수합병 등 대규모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지의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시장이 성장궤도에 오른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본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심산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향후 그룹을 책임질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리더십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여전히 물음표다. 아버지의 그늘이 여전히 짙은 데다 '보여준 게 무엇이냐'는 반문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특히 기아차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정의선 부회장은 이 부회장에 대한 경영능력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로, 그를 괴롭히고 있다.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이 부회장이 "그의 나이 또래 다른 경영인들과는 다르게 IT, 자동차 등 업계 최고급 인사들과 교류하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의 '후계자'라는 지위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이점이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점도 각 계 인사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반면 경영 능력을 가늠할 '시험대'는 많았지만 성공 사례가 드물다는 지적도 있다. 그룹 측에서는 이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전자의 부품과 세트 부문을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직접 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해본 전력이 드물다는 측면에서 '성과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시대는 다르고, 또 개인의 성공을 그룹 전체의 성공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경영 환경도 아니다"며 "다만 오너의 경영 참여에 대한 불확실성이 보완되거나 제어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이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개인의 경영 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 경영'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역으로 이 부회장의 아킬레스건을 삼성의 시스템 경영이 잘 상쇄하고 있다는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만큼의 무게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최근 삼성그룹주의 급등세도 이 부회장에 대한 기대보다 주주에 대한 이익 환원과 투명경영 등 이 회장 이후 삼성이 펼쳐나갈 경영에 대한 기대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아직 보여야 할 것도, 풀어야 할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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