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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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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올드보이'와 '와신상담'

2023-01-10 06:00

조회수 : 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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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많은 드라마나 영화들의 테마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복수'다.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려서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고, 웨이브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약한 영웅’도 키 작고 왜소한 소년 연시은이 이유없이 자신을 괴롭히며 폭력을 행사하던 양아치에 맞서 두뇌와 분석력, 도구를 가지고 참 교육을 실시하는 카타르시스가 통쾌한 복수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재벌집 막내 아들’ 역시 재벌의 충견으로 살다가 배신당한 극중 주인공의 대 서사 복수극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들 작품이 인기 있는 것은 아마 대체로 극 중 피해자들이 절대 권력자인 가해자들에 맞서 정의가 새롭게 구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이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자신과 같게 생각하면서 몰입하기 마련인데,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리 억울하게 당하고 아무리 핍박받더라도 제대로 응징해줄 수 없는 현실이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기발한 방법으로 통쾌하게 복수하는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끔찍하고 덧없는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절대 가벼이 입에 담을 것이 아니기도 하다. 
 
지난 해 25일,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자 26일 대통령은 ‘비례 원칙에 입각한 응징’을 주장하며 동태적 보복인 ‘탈리오 법칙’을 들고 나왔고, 28일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이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 보복하라, 그것이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다음날인 29일, 대통령은 직접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하여 북한의 무인기 영공 침범과 관련해 “상대에게 핵이 있든, 대량살상무기가 있든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확고한 응징과 보복만이 공격과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며 맞불 대응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이 생각보다 처참했다는 믿지 못할 보도가 쏟아지고, 미국과의 핵관련 공조를 자신했던 대통령의 워딩이 잘못되었다는 미 바이든 대통령의 답변이 나오면서 오히려 검찰출신 대통령의 너무도 강한 성정을 불안해하는 국민이 늘어나게 되었다. 평생을 범죄자들과 실랑이하면서 강하고 거칠게 살아온 대통령이 사사건건 모든 문제를 강대강 전략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에 국민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 법칙을 쉽게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위험하고 덧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20년 전에 나왔던 ‘올드보이’라는 영화의 종말이 바로 이러한 교훈을 던져준다. 
 
같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인 주인공 최민식(오대수 역)과 주인공 유지태(이우진 역)는, 유지태와 친 누나의 부적절한 사이를 우연히 목격한 최민식의 부주의한 한 마디로 평생에 걸친 비극을 맞이한다. 최민식에게 남동생과의 관계를 들킨 유지태의 누나는 19살에 목숨을 끊고, 유지태는 최민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최민식이 4살짜리 딸을 두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시점에 최민식을 납치해서 8평짜리 방에 가둬두고 15년 동안 만두만 먹인다.
 
하지만 정작 최민식은 자신이 누구에게 잡혔는지 이유도 모른채 15년 동안 갇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원수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리다,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이 8평짜리 방에서 빠져 나온 그는 19살의 아름다운 일식집 여자 미도와 사랑에 빠지고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가 사랑했던 미도는 어렸을 때 헤어진 자신의 딸이었다. 동생과의 부적절한 사랑을 최민수에게 들켜 스스로 목숨을 끊은 19살의 누나를 위해 유지태가 철저하게 계획한 근친상간적 복수 계획이었던 것이다. 
 
결국 유지태는 평생에 걸친 복수에 성공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최민수는 혀가 끊기는 고통을 당하는데, 과연 이 처절한 복수극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이런 종류의 복수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춘추시대 말기 양쯔강 하류에 있던 오나라를 월나라가 공격해서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세자를 죽게 했는데 오나라 왕 협려는 죽기 전 자신의 둘째 아들 부차를 불러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부차는 평생 부드러운 바닥이 아닌 딱딱한 장작을 깔고 잠을 청했으며 신하들에게 인사 대신에 월나라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복수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라는 명령을 한다.
 
결국 부차는 복수에 성공하고 월나라 왕 구천을 생포한다. 구천은 노예가 되어 마구간 일을 하는 등 치욕을 겪으면서 복수를 꿈꾸며 겉으로는 항복한 것처럼 하였지만, 머리맡에는 항상 쓸개를 달아놓고 쓴 쓸개를 핥으면서 지난날의 치욕을 갚을 것을 맹세했다. 결국 구천은 오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공격하고 부차는 자살하고 만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와신상담’이고, 구천의 복수를 설명할 때 ‘절치부심’이 쓰이기도 한다. 
 
대통령의 경솔한 탈리오 보복 정치가 안타까운 상황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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